자폭위협 "못 내리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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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1일 하오 3시 15분 일본 과격파 학생들에게 납치된 JAL기가 김포공항 남쪽 끝 활주로에 내리자 김포공항은 즉각 폐쇄, 완전 무장한 군경들의 포위로 「램프」안은 외부와 완전히 두절됐다.
이때부터 납치범들과 석전 기장 등 납북기안과, 피납 승객들을 구출하려는 한일 관계당국간에 숨막히는 설득과 고집이 만 20시간이나 계속됐다.
김포공항의 공군「터미널」귀빈실에 긴급 마련한 대책본부는 출항예정인 KAL기를 격납고에 숨기고 위장 북괴병을 만들어 다발총으로 무장시키는 등 납치범들에게 김포공항을 북괴 평양으로 인식시키려고 위장전술을 썼다.
피납기가 활주로를 9천「피트」가량 미끄러져 동쪽 끝에 앞바퀴가 흙바탕에 빠지면서 멎자 납치범들은 부조종사 옆문을 열고 착륙지점이 평양인지를 확인하려했다. 5분 후인 하오 3시 20분 석전 조종사가 관제탑에 『「앰뷸런스」를 대기시켜달라』는 짤막한 첫 교신을 보내와 대책본부는 번호판을 뗀 공군「버스」 1대를 납치기 옆에 대기시켰다.
곧이어 하오 3시 30분 JAL 김포공항 영업소장 산본씨가 공항직원 정완근씨와 모기관원 윤소령과 함께 북괴「지프」로 위장된 차량에 탑승, 비행기의 5m까지 접근해서 처음으로 납치범들과 통화했다.
산본씨는 이때 휴대용「스피커」를 통해 『여기는 평양이다. 나는 일본 아사히신문 평양특파원인데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제 내려주기 바란다』고 소리쳤다. 납치범들은 조종석 옆 창문을 열고 일본도를 든 채 의심스러운 듯 내려다보며 『왜 환영인파가 없느냐. 여기가 평양이라면 증거를 대라. 북괴기와 김일성 초상화룰 갖고 오라』고 요구했다.
대책본부는 황급히 가짜로 환영꽃다발과 북괴 여자처럼 한복을 입히고 북괴기를 마련하면서 대책을 협의했다.
하오 4시 10분 석전 기장은 『기내의 공기가 희박하다. 일부 승객은 실신상태다. 공기를 공급해달라』고 연막, 공항 측은 공기의 공급을 서둘렀다. 이 동안 대책본부는 북괴차량으로 위장한 「넘버」뗀 몇 대의 차량들을 납치기 주변에 왕래하게 했다.
납치범들은 하오 4시 30분 다시 『평양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거듭 요구했으나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하자 관제탑을 통해 『지형과 시설이 평양답지 않다. 환영객이 왜 없느냐. 평양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이륙, 북으로 1백「마일」만 더 가보자』고 위협했다.
하오 4시 50분쯤 공항요원이 북괴기를 가져가 보였으나 『거기는 평양이 아니다. 빨리 이륙하라』는 괴 전파가 공항당국에 포착됐는데, 이때 납치범들이 기체 안에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청취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하오 6시 2O분쯤 석전 기장은 『납치범들이 여기가 평양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빨리 이륙하게 해달라』고 요구, 대책본부는 3시간 15분 동안의 위장작업을 바꾸어 인도적인 입장에서 피납 승객을 구출하는데 중점을 두고 대책을 세웠다.
이 같은 방침이 확정되자 김봉균 치안국 외사과장이 하오 8시 45분 『착륙지점이 대한민국 서울의 김포국제공항』임을 처음으로 납치범들에게 밝혔다.
이때 대책본부는 납치범들의 요구에 따라 「샌드위치」 3백 개와 음료수를 조종사석 창을 통해 들여보냈다.
주한 일본대사 김산 씨가 밤 9시 대책본부에 와 본국정부의 훈령을 전하고 정 국방과 약 20분 동안 대책을 협의했다.
석전 기장은 밤 10시 10분 『비행기 앞에 군인들이 보이니 치워달라. 일본대사와 JAL 관계자와 면담시켜달라』고 요구하면서 「납치범들이 난폭해진다. 승객에 대해 이 이상 책임을 지지 못하겠다』고 연락해왔고 2O분 후엔 『춥다. 모포를 들여보내라』고 요구, 대책본부는 모포 l백 50장을 들여보냈다.
김포공항의 패쇄 조치가 해제되면서 동경에서 발이 묶였던 KAL기가 4시간 연착, 밤 10시 34분 JAL 본사에서 보낸 「샌드위치」와 「커피」가 도착했고, 일본의 신문기자 10여명이와 취재전은 더욱 열을 올렸다.
석전 기장은 밤 10시 10분쯤 김산 일본대사와의 면담을 다시 요청하면서 『지금 범인들이 갖고있는 폭발물만으로도 비행기는 충분히 폭발된다. 날이 새면 즉각 북괴에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
김산 대사는 밤 11시 45분 유근창 간첩대책본부장 등과 함께 관제탑에 올라가 『죄 없는 승객들 중 희망자만이라도 풀어달라』고 간곡히 설득했지만 석전 기장은 『학생들이 화내고 있다. 기체내부가 퍽 어려운 상태다. 내일 아침이라도 평양으로 보내달라. 제발 이 고통만은 면케 해달라』고 호소할 뿐이었다.
자정이 넘자 오랜 시간의 대결에 지친 듯 JAL기는 기체 안의 불을 껐다.

<갖다준 음식도 거부>
납치범들은 하오 1시 30분쯤 아침에 갖다준 음식물을 받기를 거부, JAL소속 「세단」이 납치기 밑에 까지 들어가 도로 실어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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