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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년 은행사상 최초의 여차장|이옥경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여자는 직장의 꽃이 아니다』라는 직장 여성들의 주장이 요란하지만, 창구에서 상냥하게 웃는 여행원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직장의 꽃』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이들은 「돈」이 사무적으로 오가는 영업장 분위기를 그만큼 부드럽고 산뜻하게 한다.
이렇게 매력적인『직장의 꽃』이라는 인상은 여행원의 업무를 극히 한정시키는 상당한 약점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었다. 한국에 은행이 생긴지 70년이 넘고 여행원을 채용한지 30년이 넘지만 은행은 여행원에게서「여행원 이상」을 기대해 본적이 없었다.
이런 풍토속에서 62년 차장「타이를」을 딴 이옥경여사(53·조흥은행 대구지점차장) 의 전례는 매우 이색적이면서 소중한 전례라고 할 수 있다. 일본대학 음악과를 중퇴하고 1940년 조흥은행의 전신인 경상합동은행에 입사했던 그는 14년만에 대리(3급), 22년만에 차장(2급)이 되었다. 보통 10년이면 2급이 되는 남자행원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느린 속도지만 아뭏든 그는 한국의 여행원사에「차장」의 기록을 남긴 것이다.
여행원은 사회적인 인식도 좋은 편이고 봉급도 다른 직장보다 훨씬 높아 상당히 인기 있는 직장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남녀차별대우가 가장 심한 곳이 은행이며 그 인기에 비해 여행원의 진로는 그렇게 밝은 편이 못된다.
입행하자마자 차별 대우는 시작되어 대학을 졸업한 여행원은 고등학교만 나온 남자보다도 적은 봉급을 받는다. C은행의 경우 남자대학 졸업생의 초봉이 3만원, 고교졸업생이 2만7천원인데 여자대학 졸업생은 2만4천원밖에 받지 못한다. 5급에서 4급으로 승진하는데 남자대졸은 2년, 고졸은 6년 걸리는데 여자대졸은 6년씩 걸린다.
거기다 여행원은 결혼하면 사표를 내야한다. 결혼한 여행원도 그대로 있던 한국은행에서 59년 새삼스럽게 이런 규정을 만들고 나서「결혼=퇴사」는 각 은행의 불문율이 되었다. 입행시에『결혼하면 퇴사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는 것이 보통이고, 어떤 은행은 경우에 다라 결혼한 여행원을 그대로 쓰기도 하지만 그런 특전은 3급이상으로 올라가 상당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에 한하고 있다.
다라서 대학 졸업할때 이미 결혼 적령기에 이르는 여성들이 은행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극히 한정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70∼80%의 대학졸업 여행원이 입행 3년을 전후해서 은행을 떠난다. 1천여명의 여행원을 갖고 있는 C은행의 경우 4급여행원은 20명정도 밖에 안된다.
여행원으로서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고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혼으로 일생을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여행원수는 1만3천명정도. 이 많은 숫자의 여행원들이 한데 뭉쳐『결혼하고도 다니겠다』고 고집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한 은행의 간부는『그렇게 되면 남자만 채용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이만큼 바람직한 직장으로서의 여행원의 전망은 밝은편이 아니며, 혼기를 희생하고 나서는 수많은 선구자들의 동장만이 이 직업의 전망을 조금씩 밝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최초로 여자대리를 가졌던 조흥은행은 지금 또 하나의 여자대리 장도송씨(본점)를 갖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미혼이다. 상업은행도 최필순씨(부산지점), 이예숙씨(본점)의 두 여자대리급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기혼이다. <장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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