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맞아 목포~지리산~부산 … 행군 힘들 땐 대장금 합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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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동북아시아 3개국 대학생들이 목포에서 출발해 지리산 정상을 거쳐 부산까지 300㎞에 걸친 ‘글로벌 국토대장정’에 나섰다. 성균관대(총장 김준영)가 8·15를 맞아 기획한 이번 대장정에는 베이징대·와세다대와 성균관대 학생 170여 명이 참가해 5~19일 남해안을 함께 걸으며 소통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행사는 영토 분쟁과 과거사 논란 등으로 얽히고설킨 동북아 정세 속에서 3개국의 젊은이들이 ‘대동(大同)’을 기치로 내걸고 갈등 극복과 화합의 해법 찾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출정식에는 김준영 총장과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 스루이린(史瑞琳)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 등도 참석해 학생들을 격려했다.

 3개국 대학생들도 한반도 대장정을 앞두고 기대감에 차 있었다. 최근의 동북아 갈등 탓에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조성될까 우려됐지만 기우였다. 와세다대 학생대표인 에구치 유마(江口雄磨·정치학과 4년)는 “3국 관계가 좋지 않을 때일수록 국민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중요하다”며 “우리 젊은 세대는 싸우는 걸 결코 원치 않는다. 이번에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대에서 온 판뤄시(范若曦·경제학과 2년)도 “이웃 나라끼리는 늘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들까지 반목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며 “상대국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됐으면 싶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베이징에는 한국 학생도, 한국 식당도 많고 한국 드라마도 정말 인기여서 한국 이미지가 매우 좋다”며 “한·중 관계처럼 중·일 관계도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대 학생대표인 장츠(張馳·행정학과 3년)는 “한·중·일 3국은 같은 문화적 배경에 감성도 비슷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젊은이들의 활발한 소통이 정치적 갈등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정훈(일본명 도미요시 가오루·와세다대 영문학과 2년)은 “뉴스를 보면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지만 우리 집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지만 한국인 차별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일본인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영토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역사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부족하다는 게 한국 입장인 만큼 일본이 이를 확실히 인정만 하면 친한 이웃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가벼운 마음에 출발했지만 매일 20~30㎞씩 걷는 강행군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일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지쳐 앰뷸런스를 타는 학생도 잇따랐다. 쓰지무라 시호(?村志帆·와세다대 언론학과 3년)는 “K팝을 너무 좋아해 한국에 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들다. 이렇게 많이 걸을 줄은 정말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한국과 중국 학생들이 파이팅을 외쳐줘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장자신(張佳欣·베이징대 외국어 전공 2년)은 “힘들지만 서로 응원하며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국적도 사라지고 모두들 친구가 되는 느낌”이라며 “같이 가면 지겹지 않고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격언을 몸소 체험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걷다 힘들 땐 노래를 불렀는데 한류(韓流)와 한류(漢流)의 영향으로 모두에게 익숙한 노래가 적잖았다. 중국 학생이 ?대장금? 노래를 부르자 한국·일본 학생도 다같이 합창을 했다. 이어 한국 학생이 영화 ‘첨밀밀’ 주제가를 불렀고, 일본 학생은 한국 드라마에 삽입돼 일본에서 인기를 모은 ‘곰 세마리’를 불러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가와치 미호(河內美保·와세다대 무역학과 1년)는 “김치 등 매운 음식을 어떻게 먹나 은근히 걱정했는데 다들 맛있게 먹고 있다”며 “발에 물집이 잡힌 친구의 배낭도 서로 들어주며 우정을 쌓고 있다”고 전했다. 8일 전남 장흥의 한 찜질방에 묵으며 계란을 함께 까먹은 체험은 중국·일본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9일 친목의 밤 시간에는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모두가 함께 춤추는 장관이 펼쳐졌다.

 성균관대 임종민(전자전기 전공 4년) 총학생회장은 “같이 지내보니 3국의 문화적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중국 학생들은 처음부터 힘들다는 얘길 거침없이 하다가도 점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 반면, 일본 학생들은 발이 부르트고 다리가 저려도 절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더라는 거였다. 임씨는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자 금세 친구가 됐다”며 “일본 친구도 ‘지금 내 가방 들어주면 다음에 네가 힘들 때 도와줄게’라고 제안하더라”고 전했다.

 학생들과 동행한 박선규 성균관대 학생처장은 “처음엔 서로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 같으면서도 참 많이 다르구나’라는 걸 깨닫는 것 같다”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다툼 없이 지낼 수 있지 않겠느냐. 서로 다름을 인정하게 되는 것 자체가 이번 대장정의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출정식에 참석한 3국 대표들도 이번 행사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준영 총장은 “3국의 차세대 주자들이 한반도를 함께 걸으며 역사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동북아 갈등에 창조적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경험이 3국 젊은이들의 결속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벳쇼 대사도 “한·중·일 세 나라는 비슷한 점이 많다. 걷는 과정이 험난하고 힘들지라도 여정의 끝에는 분명 큰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참가 대학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성균관대는 지난해 여름 베이징대와 와세다대 학생 50여 명과 함께했던 제주도 일주가 좋은 반응을 얻자 올해부터 이를 정례화해 3개 대학이 매년 번갈아 가며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베이징대 주최로 중국에서, 2015년엔 와세다대 주최로 일본에서 각각 글로벌 대장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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