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도 간다, 월드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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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농구가 높이 날아올랐다. 16년 만에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됐다. 김민구(오른쪽 셋째)와 이승준(오른쪽 넷째) 등 한국 선수들이 11일 아시아농구선수권 3·4위전에서 대만을 대파하고 월드컵 진출권을 따낸 뒤 몸을 부딪치며 기뻐하고 있다. [마닐라 AP=뉴시스]
유재학

‘만수(萬手)’ 유재학(50·모비스) 감독이 한국 남자농구를 16년 만에 세계 무대에 올려놨다. 유 감독이 이끄는 농구 대표팀은 11일 필리핀 마닐라 몰 오브 아시아 콤플렉스에서 열린 2013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농구선수권 3·4위전에서 대만을 75-57로 대파했다. 김민구(22·경희대·1m91㎝)가 3점슛 5개를 포함해 21점을 올리며 한국의 완승을 이끌었다. 맏형 김주성(34·동부·2m5㎝)도 대만의 귀화 흑인 센터 퀸시 데이비스(30·2m3㎝)를 꽁꽁 묶으며 승리에 일조했다.

 한국은 내년 8월 스페인 마드리드 등 5개 도시에서 열리는 FIBA 농구 월드컵(세계선수권) 진출권을 따냈다. 농구 월드컵에는 대륙별 예선을 통과한 24개 팀이 참가한다. 아시아농구선수권 3위 팀까지 월드컵 진출권이 주어진다. 동메달을 딴 한국은 1위 이란·2위 필리핀과 함께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다. 한국이 농구 월드컵에 나가는 것은 통산 7번째로 1998년 이후 16년 만이다.

 한국 농구는 10년 넘게 침체기를 겪었다. 2002년 안방에서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이후 줄곧 하락세였다. 중국과 아시아의 양강(兩强)을 자부하던 한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한 이란과 필리핀, 레바논 등에 밀리며 국제 무대와 인연도 끊겼다. ‘1만 가지 수’를 갖고 있다는 유재학 감독은 지난 6월 대표팀을 소집하면서 ‘월드컵 진출’을 목표로 내걸었다.

 전력분석팀이 따로 없어 기록지를 보고 상대 전력을 분석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유 감독은 아시아 무대에서 통할 ‘한국형 농구’의 색깔을 찾았다. 그는 김민구와 김종규(22·경희대·2m7㎝), 이종현(19·고려대·2m6㎝) ‘대학생 트리오’를 깜짝 발탁해 기동력과 체력을 대표팀에 접목하려 했다.

 출발은 불안했다. 지난달 대만에서 열린 존스컵에서 5승2패로 3위에 머물렀다. 대만에는 60-73으로 완패했다. ‘국제 무대에서는 어린 선수들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유 감독은 오히려 문성곤(20·고려대·1m94㎝), 최준용(19·연세대·2m1㎝)까지 모두 다섯 명의 대학생을 데리고 마닐라로 떠났다.

 유 감독의 승부수는 아시아선수권 첫 경기부터 통했다. 벅찬 상대 중국과의 1차전에서 한국은 40분 내내 전면 강압 수비를 펼쳤다. 왕즈즈(36·2m16㎝) 등 노쇠한 중국의 장신 선수들은 한국의 빠른 압박에 당황했고, 와르르 무너졌다. 한국은 중국을 63-59로 꺾고 분위기 좋게 대회를 시작했다. 이란과 2차전에는 65-76으로 패했지만, 말레이시아를 대파하고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카타르를 꺾었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홈팀 필리핀과 접전 끝에 79-86으로 패하며 3·4위전으로 밀렸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존스컵에서 데이비스에게 26점을 내주며 완패했던 한국은 두 번 당하지 않았다. 유 감독은 김주성과 김종규에게 데이비스를 막게 했다. 데이비스는 이날 12점에 그쳤다.

 유 감독은 빠른 농구, 협력 플레이, 베테랑과 신예의 조화, 체력전을 믹스한 ‘한국형 농구’로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다. ‘재미없는 프로농구’로 퇴보를 거듭한 한국 농구에 부활의 서광을 비춘 쾌거였다.

 유재학 감독은 “ 우리 선수들이 정신력에서 앞섰다. 스페인을 가고자 하는 열망이 컸다. 한국 농구의 인기가 많이 떨어진 시점이다. 이번 대회에서 중국을 이기고 스페인행 티켓을 땄기 때문에 한국에 농구붐이 일어날 것 같다.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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