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수익률 10%대 … 거액 자산가들 돈 몰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수백억원대 자산가인 60대 김모씨는 최근 국내 자산운용사가 내놓은 한국형 헤지펀드 상품에 10억원을 투자했다. 연초 이후 10%대의 고수익을 올리는 것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를 가장 솔깃하게 한 것은 월 단위 수익률. 올 들어 매월 수익률이 1% 안팎에서 고르게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고 ‘안정적인 투자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목표 수익률이 높은 펀드보다 시장이 출렁여도 큰 손해를 보지 않을 펀드를 찾고 있었다”며 “헤지펀드가 생각보다 위험관리를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SNI(고액 자산가)사업부 강남파이낸스센터는 다음 주 VVIP 고객을 대상으로 ‘헤지펀드 설명회’를 준비하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해부터 몇 차례 같은 설명회를 열었지만 매번 참석자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 설명회엔 “참석하겠다”는 고객이 40명을 넘어섰다. 이선욱 강남파이낸스센터 지점장은 “지난해만 해도 헤지펀드라는 말을 꺼내면 ‘그건 위험한 게 아니냐’며 거부감을 보였는데, 지금은 먼저 ‘헤지펀드 수익률이 좋다더라’며 운을 떼는 고객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국형 헤지펀드에 투자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가 처음 출범한 건 2011년 12월. 채 두 돌이 되지 않았지만 지난달 말 수탁고가 1조4745억원으로 늘어났다. 최소 5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지만 개인투자자 문의도 늘고 있다. 지난달 초 출시된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헤지펀드 상품(트러스톤 탑건 코리아롱숏)은 30억원 이상이라는 가입 제한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1200억원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하락장세에서도 수익 올려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연 수익률이다. 7월 말 기준 국내 한국형 헤지펀드 26개는 연초 이후 평균 3.34%의 수익을 냈다. 상위 10위권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6.98%까지 올라간다. 반면에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평균 -6.14%, 국내 채권형 펀드는 1.04%의 수익률을 내는 데 그쳤다.

업계는 한국형 헤지펀드가 주로 구사하는 ‘롱숏’ 전략이 최근 변동성 장세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헤지펀드는 앞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미리 사들이는 ‘주식 매수’(롱)뿐 아니라 고평가된 주식을 공매도(숏)하기 때문에 횡보장이나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차입이나 공매도 비중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강세장에서만 이익을 낼 수 있는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다른 점이다. 또 사고파는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투자 위험이 낮다는 것도 특징이다.

김태준 브레인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본부 이사는 “특정 주식의 가격이 내릴 것으로 예상될 때 일반 주식형 펀드 매니저라면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는데 헤지펀드는 주식을 빌려서라도 미리 팔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식이 오를 때는 매수를 통해, 내릴 때는 공매도를 통해 이익을 두 번 낼 수 있기 때문에 고수익 펀드라 불린다는 것이다.

투자 대상이 자유로운 점도 변동성이 큰 장세에선 유리하다. 공모 펀드의 경우 주식형이나 채권형 펀드로 투자 대상을 등록해버리면 투자액의 일정 부분 이상을 해당 자산에만 투자해야 한다. 한상수 삼성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본부장은 “헤지펀드는 채권 장세가 안 좋으면 주식이나 실물로 투자 대상을 옮겼다가 시장이 좋아지면 채권에 전액 투자할 수 있다”며 “자유자재로 투자 자산을 옮겨다닐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식 투자 수익분은 비과세
한국형 헤지펀드가 대부분 국내 주식에만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 수익에 대해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것도 매력이다. 현행 세제에서 국내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에 투자해 거둔 수익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상수 본부장은 “절세가 최대 화두인 거액 자산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최근 업계에서 내세우고 있는 헤지펀드의 장점은 수익률보다 안정성이다. 헤지펀드 하면 떠오르는 ‘고수익·고위험’ 인식을 씻고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더 안전하다”는 점에 마케팅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이성원 부사장은 “일부 글로벌 헤지펀드가 파생상품에만 공격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에 투기성 자본으로 인식되곤 했는데 이름에서 보듯 위험을 ‘헤지’(hedge·회피)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시장이 오르든 내리든 절대 수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안전한 투자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를 막는 제약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전체 헤지펀드 시장에서 개인 고객의 투자 금액은 2500억원 정도에 그친다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 하한선은 5억원이다. 포트폴리오를 감안하면 금융 자산이 최소 20억~30억원은 있는 고액 자산가들만 헤지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셈이다. 이선욱 삼성증권 지점장은 “자산 분산 차원에서 가입하는 사람 중에는 보통 수십억~수백억원대 자산가인 분이 많다. 보통 한 번에 7억~10억원을 가입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일반 투자자 수도 49인 이하로 제한돼 있다. ‘49인’이라는 제한 때문에 가입하고 싶다고 아무나 투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투자자 수가 남아 있는 펀드에 투자하거나, 투자자 한도를 채운 펀드라면 가입을 해지하는 투자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투자해야 한다.

장기 수익률 검증이 최대 관건
아직 펀드 출범이 1년9개월밖에 되지 않아 장기 수익률을 검증할 수 없다는 것도 약점이다.

전문가들은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누적 수익률, 연초 이후 수익률 외에 월 단위 수익률까지 챙겨보라고 조언한다. 박기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1본부장은 “수익 변동 폭이 크다면 안정성보다는 고수익에 초점을 맞춘 운용을 하는 상품이며, 매달 꾸준하게 일정 수익을 낸 펀드라면 안정성이 높은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레버리지(차입) 비중이나 롱숏 비중을 따져보는 것도 운용 전략의 안정성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헤지펀드는 최고 펀드 자산의 400%까지 돈을 빌려 투자할 수 있지만 글로벌 헤지펀드들도 주식투자에서 통상적으로 자산 대비 차입 금액을 200% 이상 넘기지 않는 편이다. 국내에선 100% 안팎의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브레인자산운용의 상품이 공격적인 펀드로 꼽힌다.

롱숏 비중의 경우 주식 매수와 매도 비중이 1대 1 정도면 안정적이나, 매수나 매도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투자는 다소 공격적인 상품으로 분석된다. 박기용 본부장은 “1년 미만의 단기 투자를 할 경우 시장 상황에 맞춘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를 선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투자 전략이 다양해지고 연기금 등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헤지펀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롱숏 전략뿐 아니라 이벤트 드리븐(Event Driven·기업 인수합병이나 구조조정 등의 이벤트로 인한 가격 변동을 노린 투자), 차익 거래(선물·현물 거래의 차익을 취하는 투자) 전략까지 사용하는 투자 방식이 국내에 자리잡을 전망이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펀드 출범 3년 후인 2015년께면 업계 기준인 ‘3년 수익률’이 검증돼 시장 규모가 3조원 수준으로 커질 걸로 예상한다”며 “시장이 커지면서 수익률도 점차 안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미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