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낙도"라지만「달러·박스」|충남서산군 대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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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해태)의 명산지 대야도. 충남 서산군 안면면 안면본도 동남쪽 천수만에 떨어져 앉은 이 조그만 섬마을은 말이 낙도지 주민들의 수준이 우리나라 평균 국민소득의 2배에 가까운 부촌이었다.
저녁「뉴스」를 가족들과 함께 듣고 있던 문연두씨(52)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일본에서 한국산 김구입을 거부한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시골에서 해태양식을 주업으로 삼고 있지만 관심은 국제적(?)이었다.
지금 3대 어촌계장인 이광현씨(37)는 작년 같은 해태흉년에도『2만5천속의 김을 일본에 수출, 7만여「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국내소비용 2만5천속을 생산, 천만원의 수입을 올려 1가구에 평균 60∼70만원의 소득을 보았다』고 으쓱해 보였다. 지난해 우리나라 평균 국민소득 1백95달러와 비교하면 대야도 주민들의 평균소득은 그 1.7배가 넘는 3백33달러꼴.
서산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안면도를 비롯 11개 유인도와 63개 무인도로 이뤄진 안면면의 생활수준이 군내 1읍 17개면중 서산읍 다음으로 높고 안면면내 26개 어촌계중 대야도 어촌계가 단연 으뜸을 차지한다고 했다.
초대 어촌계장을 지낸 김영근(50)는『대야산 해태가 처녀수출된 62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은 보리죽으로 연명하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대부분의 마을 남자들은 이웃마을 화물 운반선이나 어선 소요자의 고용살이로 배를 탔고, 부녀자들은 앞바다에 흩어진 굴·조개·세모(해초의 일종)등을 캐어 간신히 목숨을 이어 나갔다는 것.
이처럼 가난했던 낙도에도 오늘의 부를 심은 것은 불과 7, 8년간의 일. 대야도 연안이 해태양식의 적지로 알려진 것은 이미 일제때의 일이었다.
5·l6혁명전까지만 해도 5정보미만이던 해태양식장이 이젠 10정보로 불어났고 가구수도 32가구에서 45가구로 늘었다. 해마다 해태양식으로 가장 많은 생산고를 대고있는 이상의씨(45)의 경우, 지난해 해태발 33책(1책의 길이=1백20자폭=10자)을 매어 국내 소비품을 뺀 수 수출용만도 1천3백여속을 생산, 1백여만원의 조수익을 거두었다고 했다.
여기서『각종 자재유지관리비, 인건비등 모든 비용으로 40여만원을 제한 순수익은 못돼도 60여만원은 족히 될 것』이라고 옆에 앉았던 박명규씨(49)가 귀띔했다.
그뿐 아니었다. 섬은 비록 0.84평방㎞로 대부분 산이고 경지면적이 1만평 안쪽이었지만 안면본도인 바다건너 중장리1구에 논 사만여평을 사들인 섬사람들은 식량걱정은 없다고 그랬다
지붕개량은 옛말이다. 이미 4∼5년전부터 집집마다 19공탄을 연료고 쓰고 있었다. 어느 집을 가나「라디오」하나와 개량식 다리미 한개쯤은 다 갖고 있었고「배터리」용 전축을 가진 집도 10가구나 됐다.
마을뒤 양지쪽에 자리잡은 아담한「콘크리트」건물의 안중국교 대야분교에서 재학중이 84명의 어린이를 비롯, 중·고교 재학생 및 졸업생 30여명에 대학재학 및 졸업생만도 10명(여1)이나 됐다. 고교이상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서울 유학생이고.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씨가 하오부터 맑아지자 세살 박이 꼬마로부터 8순노인에 이르기까지 마을사람들이 해태건조장에 몰려들어 김 말리기에 바빴다 『김 1장을 만드는데 10원짜리 지폐를 찍어내는 기분』으로 정성을 쏟는다고 말하는 정관성씨(37)는『이곳엔 팔자가 사나운 사람들만 모여사는 곳으로 일에 쫓겨 설 명절마저 못 쉰다』고 겸손해 했다.
8월의 건흥작업으로부터 이듬해 4월까지의 김채취, 5월의 말뚝 꽂기등 자재 인양작업이 끝나면 6∼7월엔 농사짓기.
3백65일 새벽 4시부터 밤중까지 손쉴 겨를이 없다는 것. 오직『비오고 바람부는 날이 유일한 휴일』이란다.
지난해 대야도에서 북쪽으로 10마일 떨어진「대주도」일대 5백여정보가 해태양식의 적지임을 발견한 주민들은『우선 3정보를 개간 시험 양식한결과 생산품의 반수이상이 수출용특등을 차지했다』고 자랑하면서 올부터는 대대적인 양식을 하고 싶으나 힘이 미치지 못해 안타깝다는 표정.
5백정보를 개척하면 수출용 해태 25만속을 생산, 지난해의 수출가격(1속에 1천원)으로 따져도 연 2억5천만원의 수출고를 낼 수 있다는 계산.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어장시설 자금으로 5천만원과 2.5t급 동력선 10척(건조비 1천만원예상)은 더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섬사람들의 불편은 이곳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상생활 필수품은 15t급 화물선 1척과 장날마다 한번씩 다니는 여객선편에 광천읍에서 실어 나르면 되지만 긴급환자가 생겼을 때의 수송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했다. <오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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