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음악>-탄생 2백주년의 「베토벤」|박용구<음악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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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베트벤」은 1770년 12월, 지금 서독의 임시 수도가 되어 있는「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금년이 탄생 2백주년이 됩니다.
생일은 확실치 않으나 세례기록이 17일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 전날인 16일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56년의 생존기간 중에 지보적인 대작곡가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숨을 거둔 날짜는 확실합니다. 바로 1827년의 3월 26일 하오 5시 45분,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눈조차 휘날리는 오후에 마른 우뢰와 번개가 요란한 가운데 운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27, 28세 때부터 청각에 고장이 생겨서 해가 거듭할수록 난청이 심해 졌고 31세 되던 10월에는 유서까지 써 놓았었습니다 만은, 거듭되는 역경과 시련 속에서 9편의 교향곡, 32편의 「피아노·소나타」, 17편의 「바이얼린·소나타」, 17편의 현악4중주곡, 11편의「피아노」3중주곡을 위시해서 5편의「피아노」협주곡, 각 한편씩의 「오페라」와 「바이얼린」 협주곡 외에도 많은 기악곡과 성악곡을 작곡했읍니다.
그러나 작품량으로 본다면 선배인「바흐」나 「하이든」은 물론 35년의 짧은 생애였던 「모차르트」에게도 따르지 못하는 수량입니다.
그의 위대성은 말할 나위도 없이 탄생 2백년을 맞는 오늘까지 끊임없이 인류의 정신적인 양식이 되어주는 그 음악에 있다고 하겠지만, 2백주년을 맞는 마당에서 그의 인간으로서 위대한 일면과 음악정신에서 위대한 일면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베토벤」은 악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만은 생존시의 그는 괴팍스럽고 다루기 힘든 인물이었읍니다.
문벌 높은 집안의 미녀만을 쫓다가 실연을 거듭한 그는 독신으로 일생을 마쳐야 했는데, 21세 때부터 「빈」에서 생활하기 35년, 화가 나면 하녀에게 물을 끼얹기 일수였고 사소한 일에도 짐을 꾸려 하숙을 옮기기 무려 30여 회를 넘었읍니다.
그밖에도 선량한 친구들 의심한다든지, 신세를 진 귀족을 돼지들이라고 공중 앞에서 욕한다든지, 그의 성격적인 결함은 결코 원만한 인간과는 거리가 먼 것이겠습니다 만은 그의 결점을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은 어떤 역경에서도 재기하는 불굴의 정신력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9편의 교향곡은 위기와 극복의 생생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제3번, 제5번, 제7번, 제9번의 극적인 위기감과, 이와는 대조적인 제4번, 제6번, 제8번이 그리는 곡선은「베트벤」이 극복해야했던 어려운 고비들을 말해주고 있읍니다.
그리고「베토벤」의 음악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니 불멸의 생명력을 지닌 까닭은 그 곳에 참다운 삶을 향한 기도가 있고 인간의 해방을 위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위기에서나 음악적인 위기에서나 인간신뢰와 인간의 미래를 희망의 눈으로 보면서 극복해 나갔읍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철저한 악보주의자였습니다. 그는 과격한 육친애로 사랑하던 조카에게 배반당하면서도, 불덩이 같은 사랑에서 실연을 당하면서도, 인간에 실망할 줄을 몰랐읍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를 때마다 어쩌면 우리는 그처럼 강인한 음악정신에 말려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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