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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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엑스포 70」의「캐치프레이즈」는『진보와 조화』이다. 물론 인류의 진보(progeess)·인류의 조화(harmony)를 두고 한 말이다. 만국 박람회가 하나의「이상」을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1933년 미국「시카고·엑스포」때부터이다. 당시에도 역시「진보」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진보의 1세기』-. 60년대, 인류의 희원을 가늠해준 이정표라고나 할까.
그후 만박의「캐치프레이즈」들을 일별하면 마치 인류의 정신사를 보는 느낌이다.「평화」·「예술」·「기술」·「내일」·「문화」·「문명」·「휴머니즘」등의 어휘들은 줄곧 인류의 이상을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어느 시대에나「진보」만을 기원하지는 않았다. 문명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록「휴머니즘」·「인간」·「이해」등을 갈망하는 문구로 장식된다.
1942년「로마」만박 때는 단순히『문화「올림픽」』이라는「캐치프레이즈」를 채택했었다. 그 이전「뉴요크」만박(39년∼40년)도『내일의 세계』라는 환상에 머물러 있었다. 1937년「파리」의「엑스포」가『근대생활에 있어서의 예술과 기술』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던 것은「프랑스」인 다운 사색의 소산이다.
1958년「브뤼셀」시에서 열린「엑스포」는 최초로「휴머니즘」을 강조했다.『과학문명과「휴머니즘」』-. 인간의 척도로는 잴 수 없는 괴물 같은 과학문명에 대한 경구인 것 같다. 이 후로는 어느 때나「인간 중심」을 하나의「심벌」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시애틀」만박(62년)은『우주시대의 인간』을 주장했다. 비록 우리의 문명은 우주로 발길을 내딛어도 인간본연의 모습엔 변함이 없다는 웅변 같기도 하다.
역시「뉴요크」때(64년)에도『이해를 통한 평화』를 촉구하고 있다.「이해」란 문구 속엔「휴머니즘」이 깃들여 있다. 「이해」하는 기능을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야수들의 세계에선『이해를 통한 평화』는 도저히 기대 할 수조차 없다.
1967년「캐나다」「몬트리올」시 만박은 비로소「인간」을 주제로 다루었다.『인간과 그의 세계』-. 인간 찬가의 극치라고나 할까. 더구나 이 연대는 인간이 인류사상 처음으로 우주의 흙을 밟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었던 때이다. 문명이 절정의 경지에서 인간을 굽어 볼 때, 인류는「아이러니컬」하게도 엄숙히『인간과 그의 세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금년 만박이「진보」와「조화」를 주장한 것은「동서의 해후」를 함축하고 있는 것도 같다. 「진보」가 서구적인 문명의「캐치프레이즈」라면「조화」는 동양적인「중용의 미」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른 바「근대화」는「정신의 가치」가 함께 하지 않고는 의미가 없다는 인간회복의「에피그램」이라고나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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