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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개 시설 2명이 관리 맡아 사실상 방치 … 시민들 대피장소 '감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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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시설로 지정된 상가 건물 지하계단.

천안지역 민방위 대피시설 지정·관리가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피시설 대부분이 민간아파트로 지정 돼 있는데 위치 안내나 비상상황 발생 시 대피요령을 알고 있는 시민은 찾아 보기 힘들다. 게다가 구도심의 경우 2년이 넘도록 폐쇄된 공간을 대피소로 지정해 놓거나 일부는 외부 출입을 막기 위해 문을 걸어 잠가 사실상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형식적인 대피소 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 봤다.

민방위 대피소 지정·관리와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파트 단지의 대피시설 표지판.

문은 잠겨있고 엉뚱한 곳 지정 되기도

천안지역 민방위 대피시설은 7월말 현재 224곳에 이른다. 대부분이 아파트와 공공기관, 대형건물 지하로 지정돼 있다. 이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경우 대피시설 표지판이 붙어 있지만 이를 알고 있는 주민은 드물다. 표지판도 부족한 데다 관리사무소와 관할 주민센터에서 주민들에게 홍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안시 쌍용2동 B아파트 단지에는 지하주차장 2곳이 대피시설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지하주차장 한 곳만 표지판이 부착돼 있고 또 다른 곳은 표지판이 없다. 관리사무소가 주민센터에 표지판을 요구했지만 예산부족을 이유로 한 개만 지급 받았기 때문이다. 표지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입구 안쪽에 있어 평소 주차장을 이용하는 주민조차 대피시설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구도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천안시 원성동 5층 아파트(3개 동)의 경우 17년 전부터 각 건물 지하실을 대피소로 지정해 놨지만 표지판은 고사하고 비상구 표시등도 없다.

아파트 주변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주민은 물론 심지어 아파트 주민조차 자신이 살고 있는 건물 지하실이 대피장소로 활용되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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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 지하실은 곰팡이가 가득하고 악취도 심한데다 누수로 물까지 차 올라 대피장소로 적합하지 않아 보이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관심을 보이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은 없다.

임광성(가명·65)씨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아왔는데 우리 아파트 지하실이 대피시설이었는지 알지 못했는데 주변 주택에 사는 인근 주민들은 이곳이 대피시설인지 어떻게 알겠냐”며 “대피시설이면 주민센터나 구청에서 시설임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라도 붙여주던가 주민들에게 안내문을 돌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상가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천안시 봉명동에 있는 M당구장은 2년 전 지하층에서 2층으로 장소를 옮겼지만 여전히 대피시설로 지정돼 있다. 지하에 당구장을 대피장소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미 2년 전 당구장은 지상으로 옮겼고 빈 지하공간 계단은 울타리를 설치해 출입구를 잠가 폐쇄했다.

1층에서 1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해온 업주 조차 건물 지하실이 방공 상황 발생 시 대피장소로 활용되는 곳인지 알지 못할 정도다. 대피시설로 지정된 원성동의 한 교회 건물도 대피소 출입문을 사실상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동남구청 민방위 대피시설은 사무실로 사용하는 등 대피소로만 표시돼 있을 뿐 형식적인 것으로 드러나 민간시설뿐만 아니라 공공시설마저 대피시설 운영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인력부족으로 홍보·관리 손 놔

주민들이 이처럼 대피시설에 대해 무관심 한 이유는 평소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천안시는 비상상황 시 대피소를 찾지 못할 경우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대피시설로 이용하도록 시청 홈페이지 게시판과 지역사랑 소식지 등을 통해 안내하고 있다.

또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피소를 안내하고 있지만 관심을 갖는 주민은 많지 않다. 관련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민방위 대피장소 위치와 비상상황 발생 시 행동요령에 대한 안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표지판도 신규로 지급하거나 오래된 표지판을 교체해야 할 상황이지만 2년 마다 예산이 반영되는 데다 표지판 제작비용 예산은 고작 200만원에 불과하다. 천안시는 올해에도 200만원의 예산을 들여 표지판 100개를 제작,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하도와 신규로 지정된 대피시설 위주로 표지판 설치·교체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민센터나 시청 관련 부서에서 주민들이 자주 모이는 아파트 경로당이나 아파트 장터, 입주자 대표 모임 때 안내문 등을 배포하거나 자체 방송을 통해 정기적으로 대피시설을 알리도록 협조를 당부해야 할 형편이지만 홍보예산이 전무하다 보니 안내문을 제작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직원이 직접 방문해 안내하고 싶어도 각자 업무가 있어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아파트의 경우 지하공간을 대비소로 활용하지만 대부분 잠겨있다.

대피시설을 관리하는 인력도 턱 없이 부족하다. 224곳을 지정·관리하는 직원은 천안시 재난안전과와 동남구청 직원 등 2명뿐이다. 한 번 점검하려면 수개월이 소요되는 데다 다른 업무도 많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천안시 재난안전과 관계자는 “2년 전 발생한 연평도 사건 이후 지역에 소재한 대피시설을 대대적으로 점검해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대피시설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무관심과 홍보 및 표지판 제작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주민들에게 대피시설 안내와 행동요령에 대한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인력도 없다 보니 2명이 대피시설을 지정 관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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