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 잡아야 세계서 성공 … 필립스·랩 등 신제품 첫 출시 붐

남성 스킨케어 브랜드 ‘랩 시리즈’가 7일 서울에서 인삼·녹차 성분 등을 배합한 안티에이징 에센스 로션과 아이크림을 출시했다. 한국에서만 론칭 행사를 할 정도로 한국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구윤성 인턴기자]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진출해 지난해 248억 유로(약 36조원)의 매출을 올린 글로벌 기업 필립스는 올 5월 한국·미국·영국 남성 소비자의 피부 관리 행태를 조사했다. 필립스코리아 측은 “네덜란드 본사가 주요 시장인 미국·영국과 함께 한국을 콕 집어 분석 국가로 택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기관 블라웨(Blauw)가 진행한 이 조사에서 한국 남성 80%가 피부 관리를 중요한 요소로 꼽아 미국(73%)·영국(62%)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현재의 얼굴 피부 관리 상태에 만족한다는 답은 한국이 21%로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월등히 낮았다.

한국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쓰는 화장품 개수도 훨씬 많았고, 클렌징에도 관심이 높아 56%가 비누가 아닌 전문 클렌징 제품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립스는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개발한 신제품 ‘영킷’ 면도기를 1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전기 면도기에 1만7000여 개의 미세모가 달린 클렌징 브러시를 끼워 면도도 하고, 클렌징 기구로도 쓸 수 있는 제품이다.

　한국의 남성 미용 시장이 글로벌 업체들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험무대(테스트베드)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 규모도 1조원을 넘었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sophisticated) 시장”(패트릭 쿨렌버그 비오템 옴므 글로벌 사장)이기 때문이다.

　SK-II는 2011년 남성 전용 스킨케어 라인인 ‘SK-II MEN’을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내놨다. SK-II MEN 피테라 에센스는 출시 4일 만에 한 달 물량이 다 팔렸다. 올 3월엔 제품 종류를 세분화해 SK-II MEN 브라이트닝 세럼과 SK-II MEN UV 프로텍트 모이스처라이저 두 제품을 한국 시장에서 선보였다. 역시 세계 최초다. 백화점 남성 화장품 브랜드 글로벌 1위 비오템 옴므도 2006년 한국시장에서 내놓은 남성 전용 자외선차단제가 잘 팔리자 최근 75ml 대용량 제품까지 내놨다. 남성 자외선차단제는 한국 시장 판매 비중이 전체의 70%에 달한다.

　에스티로더그룹의 남성 전문 스킨케어 브랜드 ‘랩(LAB)’ 시리즈도 지난해 1월 세계 최초로 대만과 한국에서 BB크림을 내놨다. 2주 만에 수입 물량이 매진됐다. 랩 시리즈 김정숙 차장은 “출시 5년 전부터 한국 남성들의 수요를 반영해 뉴욕 본사에 지속적으로 남성 전용 BB크림 개발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7일에는 인삼 성분을 넣어 아시아 시장에 특화한 에센스와 아이크림도 출시했다. 일본에서 2008년 출시된 후 3년 만에 남성 기초화장품 2위에 올라선 ‘우르오스’도 첫 수출 국가로 한국을 선정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유통망을 늘리고 있다. 한국 시장의 반응을 보고 글로벌 진출 여부를 가늠하기로 했다.

　한국 남성들의 피부 관리에 대한 관심이 유달리 높은 이유는 뭘까. 블라웨는 “한국 여성의 외모·성형수술·피부에 대한 높은 관심이 남성에게도 전이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회경제학적 분석도 있다. “외모가 경쟁력이자 힘”이라는 인식이 한국 남성의 피부 관리에 대한 집착을 불렀다는 것이다. LG생활건강 화장품 부문 김병열 상무는 “남성들이 건강한 피부가 사회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면서 스킨케어 시장이 폭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특히 중년 남성들이 스킨케어 제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퍼지며 프레스티지(고가) 남성 화장품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돌과 연예인 등 방송이 선호하는 남성상이 여성스럽고, 고운 피부를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글로벌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한국 남성 뷰티 시장을 분석해 본사로 보내는 리포트에 ‘Flower Man(꽃미남)’이란 단어가 단골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