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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가엾은 노총각, 반 고흐가 공개한 침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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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번엔 그냥 내 방이야. 그러나 색채에 각별히 신경 썼어. 그림을 보면 마음의, 혹은 상상의 휴식을 얻을 거야. 창백한 보라색 벽, 붉은 기 도는 마룻바닥, 신선한 버터처럼 노란 침대와 의자…. 그뿐이야. 이 방엔 아무것도 없어. 문도 닫혀 있어. 가구의 견고함은 또한 흔들리지 않을 휴식을 표현하고 있지. 그림엔 흰색이 없지만 액자는 흰색으로 할까 해. 이것은 내게 강요된 휴식에 대한 복수야. 내일도 종일 이 그림을 매만질 거야.”

 1888년 남프랑스 아를에서 35세의 빈센트 반 고흐(1853∼90)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색채로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는 설명이 주목된다. 이것은 그의 말처럼 완벽한 휴식의 그림일까. 반대로 너무 다채로워 오히려 날카롭게 느껴지는 색상, 방을 빨아당기듯 한 점으로 몰려 있는 마룻바닥의 선, 거친 붓터치가 보여주듯 불안하고 쓸쓸한 그림일까.

빈센트 반 고흐, 방, 캔버스에 유채, 72×90㎝, 1888,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반 고흐의 ‘방’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작품 10선에 꼽혔다. 구글이 세계 262개 미술관과 함께 진행한 ‘구글 아트 프로젝트’의 지난 2년 반 데이터를 본지가 분석한 결과다. 1500만 사용자가 개설한 35만 개 갤러리에 가장 많이 인용된 이미지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렘브란트의 판화 ‘창문 앞의 자화상’, 그리고 ‘방’ 순이었다.

 구글이 누구나 명화를 쉽게 보는 ‘미술관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2011년 2월 이 프로젝트를 공개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경탄한 지점은 ‘확대해 보기’였다. 기존에 알고 있던 명화를 새롭게 확인하는 오락거리였다. 별도의 복잡한 장치 없이 개인 컴퓨터로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데는 테크놀로지의 힘이 컸다. 동덕여대 강수미(미학) 교수는 “기존의 명화 감상에선 권장되지 않던 방법이지만 롤러코스터나 록페스티벌을 즐기고, 헵틱으로 뭔가 직접 하는 걸 당연시하는 이 세대에겐 익숙할 시각 경험”이라며 “미술계에서처럼 명화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아서 가능한, 기술이 예술을 흡수해 적용한 사례”라고 평했다.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그림이 반 고흐인 것은 이상하지 않다. 미켈란젤로나 다 빈치처럼 타고난 천재가 그린 저 하늘의 이야기보다는 우리처럼 시행착오를 거듭한 지질한 인간이 편지 쓰듯 솔직하게 그린 자기 얘기에 더 공감이 갈 테니. 그런데 왜 하필 침실이었을까. 이 가엾은 노총각 화가의 방을 구석구석 뜯어보는 것은 그저 명작에 대한 경이 때문일까.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