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6년 만에 '고추 마이스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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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북 영양군 읍내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리면 ‘고추 마을’ 무창리에 닿는다. 김장용 빨간 고추를 재배하는 농민 100여 명(30여 가구)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그런데 이 작은 고추 마을에 ‘고추 전문가’로 이름난 농민이 있다. 이달 초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의 ‘고추 마이스터’로 선정한 방영길(55·사진)씨다.

 방씨는 6개월간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한 필기 시험을 치르고, 심층 면접, 현장 심사를 거쳐 고추 마이스터 자격을 얻었다. 고추 마이스터는 다른 고추 재배농에게 교육과 컨설팅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고추 분야 최고의 장인을 뜻한다. 국내엔 충북 에 45년간 고추를 재배한 마이스터가 딱 한 사람 더 있을 뿐이다.

 방씨는 수십년간 고추를 키워온 농부가 아니다. 6년 전 처음 고추를 만져본 서울 출신 귀농인이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동부제철에 입사해 서울에서 20여 년을 다녔다. 그러다 2004년 병마개 회사인 ‘두일캡’ 전무이사로 옮겨 일하다 2007년 퇴직했다.

 2008년 귀농을 결심했다. 아들과 딸, 아내를 데리고 공기 좋은 곳을 무작정 찾아다녔다. 그러다 그해 2월 경북 영양군에 정착했다. 고추 주산지인 영양군에 둥지를 틀면서 자연스럽게 고추를 재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경북대 농민사관학교, 안동대 마이스터 과정 등 고추 재배법을 알려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배웠다. 고추를 키울 때 비닐 대신 흰색 부직포를 덮으면 더 매콤하고 질 좋은 고추가 생산된다는 등의 ‘노하우’도 터득했다. 방씨는 “회사에서 자재를 관리하고, 직원들을 보살피듯 고추를 키웠다”며 “고추가 잘 자라는 환경과 발육형태를 과학적으로 데이터화해 분석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고추에 집중하며 조금씩 재배지를 넓힌 그는 현재 1만8000여㎡ 규모의 고추 재배지를 가진 무창리 부농이 됐다. 연 수익 8500만원이 넘는다.

 최근 방씨는 방송통신대에 입학해 농업학을 공부하고 있다. 농업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라는 그는 “덴마크 같은 농업부국처럼 날짜와 시간까지 계산해 튼실한 농작물을 키우는 ‘선진농업’을 꼭 정착시킬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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