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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소접근 새단계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월에 들어서 소련과 서독간의 관계에 2개의 중요한 발전이 보였다. 하나는 무력 불행사 선언의 교환에 관한 양국간 교섭을 위해서 「본」에서 「에콘·바르」 국무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이며 또 하나는 소련의 천연 「개스」에 대한 서독의 대구경 「파이프」 의 교환에 관한 협상이 개최된 것이다.
어느 것이나 최근에 있어서 양국간의 접근을 상징하는 새로운 현장이다. 무력 불행사 선언의 교환에 관한 소련과 서독의 교섭은 12윌 8일 「모스크바」에서 시작되었으며 여기에는 소련측에서 「그로미코」외상자신이 출석했고 서독측에서는 「알라르트」주소 대사가 출석하여 12월중에 3회 개최되었다.
그후 「알라르트」대사는 1월중 2회 귀국하여 본국정부에 경과를 보고했다.
「브란트」수상은 12월 12일의 기자회견과 1윌 14일의 『국가의 현상』보고에서 소련과의 교섭을 비밀리에 진행할 의사를 거듭 밝히고있다. 또 소련 측도 양국간 교섭의 내용을 전혀 발표하고 있지 않아 진전상황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러나 「바르」국무상이 교섭을 맡고 나선 경위로 미루어 보면 교섭이 약간은 진전되고 있는 것을 쉽사리 알수있다.
「본」의 정계 「업저버」는 「바른」국무상 자신이 대소 교섭했다는 자체가 서독이 이 교섭에 중요성을 두고있다는 증거이며 교섭은 새 단계에 들어간 것이라고 보고있다.
1월에 들어서 북평에서 중-소 회담이 재개되었으나 중·소 관계의 개선은 극히 희미한 것이며 더우기 중공이 「바르샤바」회담재개에 의해 미국과 접근한 현실에서 볼 때 소련은 점점 더 중공이외의 방면에서 전쟁을 피하고 되도록 우호관계를 증진할 필요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서독과의 무력 불행사 교섭은 확실히 소련의 거시적인 정책의 일환이며 그리고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서독은 「브란트」수상의 언명에서 보면 소련과의 무력 불행사 교섭의 범위 내서 양국간의 모든 현안을 취급할 의향이다. 「본」으로부터의 보도에 의하면 소련 측은 교섭에 있어 현재로서는 아무런 전제조건도 달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브란트」수상이 의도하는 바와 같은 형태로 소련-서독간의 교섭이 진행된다고 하면「오데르-나이세」문제라든지 「유럽」의 안보 같은 매우 광범한 현안은 별도로 하고 자잘한 문제 등을 처리해낼 것 같다.
이미 소련이 「브란트」정권의 「이니시어티브」에 의한 교섭에 응하고 있는 것 자체가 소련의 독일·「유럽」 정책의 대전환을 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독은 무력 불행사 선언의 교환을 동구정책의 실마리로 하고있는데, 소련 측에서 보면 서독과의 이 교섭은 동「유럽」제국의 독일정책에 하나의 지표를 부여하는 의미에서 중요성을 띠고있다.
소련과 서독은 이미 경제관계에서 접근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의 가장 현저한 예는 2월1일「에센」에서 소련의「니콜라이·오시포프」무역성 차관과 서독의「루르·개스」, 「마내스만·엑스폴트」, 「도이체·뱅크」의 3사간에 체결된 계약이다.
이것은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해서 1973년부터 천연「개스」를 수출 (당초 연간 5억입방m, 최종적으로는 연간 30억입방m)하는데 대해 서독은 대구경 「파이프」1백 30만t을 수출한다는 것으로 서독은 소련에 15억 「마르크」의 장기차관을 대여한다.
이 철강 「파이프」수주는 당일의 강관계약으로서는 서독사상 최대의 것이라고 하며 양국의 경제관계에 큰 진전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목되고있다.
소련에 이어 서독과 구체적인 접촉에 들어간것은 「폴란든」이다. 양국간에는 오늘날에도 아직 외교관계가 없으며 정부간 교섭도 이번이 처음이다.
「폴란드」는 종래 서독과의 교섭을 전제로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의 승인을 요구했으나 69년 11월 24일 서독 측이 먼저 교섭할 것을 제안한데 대해 12월 22일 「폴란드」측이 이를 응낙했다. 「셸」서독외상이 1월 27일 「본」에서 이야기한 바에 의하면 2월 5일부터의 서독·「폴란드」간 교섭서는 영토를 비롯, 양국간의 공동관심사가 취급된다. 「브란트」 수상의 동구정책의 반응은 의외로 좋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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