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소련의 불침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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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독·소련·동독·「폴란드」 사이의 이른바 4각 관계가 주목되고 있다. 서독은 이미 작년 12월 8일부터 「모스크바」에서 「무력행사 포기 선언」에 관한 협상을 시작했고, 지난 2월 5일과 6일 「바르샤바」에서는 같은 문제를 가지고 「폴란드」와 회담을 가졌다. 동독 또한 지난 12일 양독 수상회담을 제의한바 있지만 동-서독간의 회담도 가까운 장래에 개최될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3일 서독 국무상 「에곤·바르」씨와 「코시긴」소련 수상간의 장시간에 걸친 회담은 협상의 진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독과 소련간의 회담은 물론, 서독과 「폴란드」 의 회담도 극비에 붙여지고 있으므로 그 상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서독과 소련간의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뿐만 아니라, 서독과 「폴란드」 의 협상, 그리고 지난 2월 1일 서독과 소련간의 무역협정 등이 체결된 것을 미루어 볼 때 구라파 정세에는 유례없는 해빙기운이 감돌고 있다 할 것이다. 특히 서독과 소련간의 협상은 서독과 「폴란드」간의 협상, 나아가서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동-서독 협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다른 협상과 달리 그 협상의 귀추가 중대시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서독-소련간의 협상이 어떤 진전을 가져올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서독의 입장에서 보면 작년 10월 「브란트」정부가 등장한 이래 대 동구정책의 대본으로 「무력행사 포기선언」을 내세웠나. 「브란트」 수상의 말을 빌면 『무력행사 포기선언의 목적은 어떤 경우에도 군사력과 기타 힘을 행사하여 현상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것은 상호 불가침성 존중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독의 대 동구정책이 기본적으로 동구와의 화해와 구주 평화촉진은 물론, 서독의 국가이익에서 출발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열매를 맺기에는 아직도 상당한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얄타」 회담이래 지난 25년간에 걸쳐 동구 공산권이 한결같이 주장한 「오데르나이세」선 국경의 인정을 비롯해서, 동독을 국제법상의 국가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서 엿볼 수 있다. 또한 서독-소련간의 「무력행사 포기선언」이 실효를 갖기 위해서는 현존 「나토」와 「바르샤바」군사동맹간의 불가침 또는 군비 상호제한 등이 따라야 할 것이다.
또 설혹 「무력행사 포기선언」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도 의심스러운 것이다. 역사적으로 불가침조약의 유래를 보면 일찌기 「로카르노」 조약 (1925년)을 비롯해서 독-소 불가침조약(1939년 8월 23일), 일-소 불가침조약(1941년 4월 13일) 등이 있었지만 다같이 얼마 안가서 깨졌다. 동구 공산권은 서독의 「무력행사 포기선언」제의를 악 이용하여「나토」군사력의 약화, 서구의 분열 등을 획책할지도 모르며 그럴 경우, 그것은 처음부터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끝으로 지난날 구라파에서 냉전의 초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같이 분단된 서독의 향방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구라파에서 냉전시대가 가고 동-서 접근의 해빙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시아」정세 특히 한국이 직면한 정세는 여전히 냉혹한 것이 있음을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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