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1일에 남긴 마지막 사랑의 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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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빌딩 꼭대기 층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모이세스 리바스는 가까스로 아내에게 한 마디 말을 남길 수 있었다.
죽기 직전 사랑하는 이에게 작별을 고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있을까? 과연 입을 열어 그 말을 할 수는 있을까?

지난해 9월11일, 세계무역센터(WTC)에 대한 공격으로 사망한 2천8백명 이상의 사람들은 이 같이 난해한 질문에 직면하게 됐다.

테러 공격은 수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이제 막 하루 일을 시작했을 무렵 일어났다.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건물 꼭대기 층에 위치한 유명 레스토랑인 '세계의 창'의 요리사였던 모이세스 리바스(29)는 공격 직후 전화를 걸 수 있었다.

리바스의 아내 엘리자베스 리바스와 두 자녀.
모이세스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리바스에 따르면 전화는 의붓딸인 린다 배러건이 받았다.

엘리자베스 리바스는 "그래서 나는 린다에게 전화를 해 '린다, 모이세스가 전화했니?'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린다는 '응, 엄마. 모이세스가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래요. 모이세스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엄마를 사랑한대요.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 뿐이에요'라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모이세스 리바스는 간접적으로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 후, 다시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리바스는 "수많은 사람들이 울며 소리치고 있었을 텐데, 연기와 그 밖의 것들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지고 있었을 텐데 그는 내게 전화를 걸기 위해 애를 썼다. 그가 내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동응답기에 남겨진 목소리

밥 해링턴은 두 빌딩 중 하나에 갇힌 자신의 딸 멜리사 해링턴 휴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두 개의 건물 중 하나에 갇혀 있던 국제무역 컨설턴트 멜리사 해링턴 휴즈(31)도 첫 번째 비행기가 북쪽 건물에 충돌하고 9분이 지난 오전 8시55분, 매사추세츠 집에 있는 아버지 밥 해링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 해링턴은 "멜리사가 다소 분별이 없었기 때문에 그 애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얘야, 좀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 말해보렴. 그래야 내가 도와줄 것 아니니'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딸의 얘기를 듣고 밥 해링턴은 TV를 틀었다. 불타고 있는 무역센터를 본 그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아버지답게 냉정하고 침착하게 비상구를 찾으라고 딸에게 얘기했다.

그는 "딸에게 계단을 찾아 될 수 있는 한 빨리 건물을 벗어나라고 얘기했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딸은 '나도 아빠를 사랑해요'라며 '아빠가 들어줘야 할 부탁이 있어요. 션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12분 후인 오전 9시7분, 멜리사는 신혼의 남편인 션에게 두 번째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션은 자고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션, 나에요. 당신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나 지금 뉴욕에 있는 이 빌딩 안에 갇혀 있어요. 지금 이곳은 매연이 자욱해요. 난 그냥 내가 당신을 항상 사랑한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았으면 해요."

멜리사 해링턴 휴즈는 자동응답기에 남편 션에게 보내는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었다. 이들은 신혼부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애끓는 기억을 안고 살아야하지만 그래도 그는 그나마도 작별 인사를 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해링턴은 "멜리사가 내게 전화를 했을 때, 그 애는 겁에 질린 상태에서도 건물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션에게 메시지를 남길 무렵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자신이 죽게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해링턴은 "그래도 그 애랑 통화를 할 수 있었던 것만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제까지나 '사랑한다', '사랑해요, 아빠'라는 말을 나눴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 때는 마냥 고통스럽기만 하다. 딸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106층에 갇혀 있어요"

희생자가 인터넷을 통해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빌 켈리(30)는 자신의 안전 여부를 묻는 e-메일을 보낸 블룸버그사의 판매부장에게 오전 9시23분경 블랙베리 호출기를 이용해 e-메일을 보냈다.

네명의 누이들 중 둘과 함께 있는 빌 켈리. 켈리는 106층에 갇혀 있는 동안 블랙베리 호출기를 이용해 2개의 e-메일을 보냈다.
그는 "아직까지는 괜찮다. 우리는 106층에 갇혀 있지만 소방대원들이 거의 이곳까지 온 것 같다"고 답장을 보냈다.

켈리의 여형제인 콜린은 그간 켈리로부터 받은 편지들에 집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정말이지 그 편지들을 보고 또 보고 그랬다. 빌이 그동안 전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정말로 알고 싶었다. 내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빌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시는 빌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방법이라고 여겨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형제인 미미는 켈리와 관련된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살아있는 동안 보냈던 편지들"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는 평생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할 테지만 나는 빌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명예롭게, 용기있게 죽었을 것이다. 그는 신사답게, 많은 사랑과 믿음을 안고 죽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한편, 9월11일 워싱턴 외곽에서는 객실 뒤쪽에 승객을 몰아넣은 채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국방성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정치 뉴스 해설가 바바라 올슨(45)은 비행기 납치범들에게 들키지 않고 핸드폰으로 남편인 테드 올슨 법무차관에게 전화를 거는데 성공했다.

바바라 올슨은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펜타곤에 충돌하기 직전, 자신의 남편인 테드 올슨 법무차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먼저 바바라 올슨은 남편에게 자신이 탄 비행기가 납치됐다는 사실을 전했다.

테드 올슨 법무차관은 2001년 12월25일 CNN의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 "우리는 비행기가 아직 하늘에 떠있고, 여전히 날고 있다며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서로를 안심시켰다"라며 "나는 아내에게 무사할 것이라고 말했고 아내도 별 일 없을 것이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위로했으며,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던 중 전화가 끊겼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국방성에 충돌해 탑승객과 승무원, 국방성 내에 있던 사람들 등 184명이 사망했다.

또 다른 피랍 비행기인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에 있던 승객들 중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화를 건 사람들이 있었다.

납치범들과 맞서 비행기의 통제권을 되찾으려고 애썼던 승객 중의 한 명인 마크 빙햄(31)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의 어머니인 앨리스 호글런은 아들이 "내가 엄마를 대단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나 지금 비행기에서 전화 거는 거예요. 이 비행기는 납치됐어요. 여기에 지금 폭탄을 갖고 있다는 남자 3명이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15분 후,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은 펜실베이니아주 서머셋 카운티에 있는 시골 지역의 한 들판에 추락해 승무원과 탑승객 40명이 사망했다.

NEW YORK (CNN) / 이정애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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