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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 설치해 고충 듣고 무례한 직원은 현업 out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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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호 23면

‘갑 중의 갑’ 대형마트들이 자세 낮추기에 나섰다. 최근 갑을관계 논란이 커지면서 비판을 받아온 대형 유통업체들이 이제는 몸을 사리며 협력업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갑(甲) 중 갑’ 대형마트들 협력업체에 몸 낮추기

최성재 이마트 식품본부장(왼쪽 둘째)이 협력업체 관계자들과 만나 상담하고 있다. [사진 이마트]

이마트는 지난 4월부터 ‘식품본부장 협력회사 상담실’을 운영 중이다. 매월 1일과 15일 최성재(54) 식품본부장(부사장)이 하루 두 시간씩 협력회사 임직원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협력업체 관리는 보통 대리나 과장 직급인 상품기획자(바이어)들의 몫이었다. 사실 협력업체들에 최 부사장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존재’와 다름없다. 식품본부는 지난해 이마트 매출(약 13조5000억원) 중 절반 이상(7조2000억원)을 차지하는 노른자위 부서여서 물품 공급을 놓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최 부사장이 협력업체 관계자들과 만나는 곳은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상담실 중 한쪽에 있는 작은 부스. 면담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평소 직원들이 협력업체 사람들을 만나던 곳으로 정했다는 설명이다. 별다른 예약을 할 필요도 없다. 상담일 오후 4시부터 6시 사이에 가면 최 본부장이 항상 부스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상담실을 다녀간 협력업체만 15곳에 달한다. 최 부사장은 “그동안 잘 몰랐던 협력업체의 사정을 자세하게 알게 돼 도움이 됐다”며 “소통을 통해 협력업체가 강해지는 게 결국 이마트가 강해지는 길”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또 직원들에게 ‘협력업체 상담시간 준수하기’ ‘격식 있는 존칭 사용’ 등의 협력회사 5대 상담수칙도 정해 이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롯데마트도 협력회사와의 직접 소통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협력회사가 이 회사 노병용(62) 대표에게 직접 부당함을 고발할 수 있는 e메일 핫라인(CEO@lottemart.com)을 운영 중이다. 신고자 이름 등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노 대표가 직접 신고내용을 파악해 처리한다. 협력업체로선 억울한 일을 호소할 수 있는 ‘신문고’가 생긴 셈이다. 지난달부터는 ‘자율 공정거래 회복 심의위원회’란 기구도 새로 만들었다. 이 위원회는 롯데마트의 일방적인 거래조건 변경이나 행사 강요 때문에 협력사가 손해를 입었을 때 이를 보상하도록 해주는 기구다. 본부장급 임원 6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신고를 받은 뒤 2주 내에 보상을 마무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대 100%까지 피해액을 보상하고, 사안에 따라 일정한 위로금도 추가 지급하게 된다. 직원교육도 강화했다. 내년 1월부터는 협력회사를 상대하는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대외 거래 담당 자격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인성검사와 소양교육 등을 거쳐 자격을 평가해 기준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협력업체 업무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또 협력업체에 무례한 언어폭력이나 몰상식한 행동을 할 경우엔 3년간 현업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달부터 230여 명의 롯데마트 소속 상품기획자(MD) 전원은 자신이 맡고 있는 협력회사에서 하루 동안 근무하는 ‘협력사 1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직접 협력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이들의 어려움을 느껴보라는 취지에서다.

롯데마트 노병용 사장은 “겸손한 마음으로 예의를 지키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조직 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졌다”며 “다양한 제도들을 통해 과거 업계의 잘못된 관행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없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협력업체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제도들도 정착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2011년부터 국내 우수식품 협력업체 상품의 해외수출을 돕기 위해 모기업인 테스코의 영국 현지 매장에서 ‘한국식품전’을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CJ제일제당과 롯데 등 대기업은 물론 한일식품과 국제식품 등 26개 국내 식품업체의 상품(142종)을 영국 현지인들에게 선보였다. 영농인 지원 프로그램도 있다. 홈플러스는 올해 4월부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센터와 함께 농수축산물 수출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민간기업과 공기업이 손잡고 우리나라 농수축산물의 해외판로 개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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