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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이 어떻게…] 터널 바람 타고 불길 급속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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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구지하철 화재는 삽시간에 상상도 못할 정도의 재앙으로 번졌다.

시민들은 한 객차에서 일어난 화재가 어떻게 건너 선로의 열차까지 집어삼킬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건너 선로의 전동차에까지 불이 번진 이유=국내 지하철 객차는 온통 가연성 물질로 꾸며져 있다. 시트는 물론 천장 손잡이에서 도료에 이르기까지 가연성 물질 일색이다. 일본 등 선진국들이 철저히 방염처리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또 앞뒤 객차 는 화학섬유 재질의 주름막으로 연결돼 진동을 완충시킨다. 그러나 이번 불은 이 화학섬유에 옮겨 붙은 뒤 손을 쓸 틈도 없이 곧바로 다른 객차로 번져 나갔다. 반대편 선로에 있던 전동차와의 거리도 1m가 채 안된다.

뜨겁게 달아 오른 객차의 불꽃이 옮겨 붙는 것은 너무 쉬운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특히 지하 갱도에는 전동차가 달리지 않아도 일정 풍속의 바람이 불어 삽시간에 불길이 옮아가게 돼 있다는 설명이다.

◇화재가 났는데 어떻게 반대편에서 전동차가 들어왔는가=대구지하철의 운행시간표를 보면 중앙로역 도착시간이 하행선 전동차는 오전 9시52분40초에, 상행선 전동차는 오전 9시56분45초로 돼 있다.

특히 뒤이어 중앙로역에 도착하는 상행선 전동차는 바로 이전 역인 대구역을 오전 9시55분35초에 출발하도록 돼 있어 최소한 3~4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상행선 전동차는 사령실로부터 아무런 정보.지령도 받지 못하고 승객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대구지하철공사 측은 18일 오후의 브리핑에서 "하행선 전동차가 역에 들어온 뒤 한참을 지체하다 화재가 발생해 후속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지하선로의 화재라는 중대 사태가 발생했는 데도 승무원들이 바로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거나, 비상시 대처하는 체계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안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또 맞은편 전동차의 기관사가 제동장치를 제때 가동하는 등 적절히 대처했는지도 의문이다. 화재장소까지 차량이 들어왔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명구조를 위한 비상장치는 없나=이번 화재는 영문을 모른 채 맞은편에서 들어오던 전동차 승객의 피해가 컸다. 전동차의 전원이 끊기면서 출입문이 열리지 않은 데다 사방이 어두워 객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이다.

이는 대구지하철의 방호체계가 화재 진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비상시 탈출 등 인명구조 측면에는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낳고 있다. 최소한 출입문이 수동으로 작동될 수 있었거나 비상 탈출구를 나타내는 야광표지판이라도 설치했다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떼죽음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지하 3층 승강장에는 스프링클러가 아예 없었고, 역무시설이 있는 층의 스프링클러도 작동하지 않았다.

특별취재팀=전국팀 송의호.정기환 차장, 홍권삼.황선윤.김관종.송봉근.조문규 기자, 사진부 장문기 기자,사건사회부 김승현 기자, 메트로부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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