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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어디가' 남자예능이 보여주는 요즘 남자들이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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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남자예능’이 대세다. TV 예능 프로에서 여성들이 사라졌다. 중장년 여성 대상의 집단토크 프로를 빼고 나면 제한적인 패널 역할이 고작이다. 여성 출연자들로만 구성된 ‘여걸식스’ 같은 프로들은 찾기 힘들다.

 군대(‘진짜사나이’), 스포츠(‘우리동네 예체능’) 같은 ‘남성적’ 관심사들이 예능의 소재가 됐다. 기러기 아빠, 노총각 등 싱글남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나 혼자 산다’, 아빠와 자녀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빠 어디가’ 등 남성의 다양한 역할도 보인다. 압권은 70대 할아버지들이 해외 배낭여행을 떠난 ‘꽃보다 할배’다. 젊음의 상징인 배낭여행과 할아버지라는 이질적 조합 속에서, 나이를 잊은 듯 귀여운 할배들이 탄생했다. ‘꼰대’ ‘뒷방 노인네’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냈다.

 이런 예능들이 보여주는 남자들의 모습은 과거와 크게 다르다. 밥을 하고, 아이를 먹이고, 씻기며 커뮤니케이션 한다. 아줌마들처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애들처럼 티격태격하고 떼를 쓴다.

 이처럼 다양한 남성에 주목하는 남자예능이 쏟아지는 것 자체가 탈권위시대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라는 분석이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특히 예능 속 남자들의 유희문화, 놀이에 주목했다. “과거와 달리 남자예능들은 잘 노는 남자들을 보여준다”고 했다. ‘나 혼자 산다’의 이성재는 장난감 광선검을 갖고 아이처럼 노는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다. 전형적인 키덜트의 모습이다.

 최근에는 크레용팝이라는 신인 걸그룹의 인기를 눈여겨볼 만하다. '빠빠빠'라는 노래가 인기다. 추리닝 차림에 독수리 5형제를 연상시키는 헬멧을 쓰고 개다리춤, 로보캅 춤, 왔다리갔다리춤, 로봇 출동 동작 등을 변형한 춤을 춘다. 실제 멤버들 나이는 20대 초·중반이지만 아이 같은 창법과 목소리가 마치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을 보는 느낌이다.

 남성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어린이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성적 어필을 배제한 유아적 이미지에 귀엽다고 열광한다. 길거리 콘서트나 군 위문 공연에서 남성 팬들이 찍었다는 ‘직캠’도 속속 올라온다. 팬이 아니라 관계자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괴성을 질러댄다. “점핑점핑” 하는 후렴구에서는 같이 방방 뛰기도 한다. 크레용팝을 좋아하는 아저씨란 뜻의 ‘팝저씨’란 말도 나왔다.

 이 같은 남성 팬들의 뜨거운 반응 뒤에는 그들이 어렸을 때 즐겨 봤던 만화영화, 한 번쯤 따라 했던 춤 동작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점핑점핑 따라 뛰면서 소년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은 것이 아닌가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대중문화에 투영된 남자들은 어른 남자 아닌 소년의 얼굴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어른 남자로 살아가는 게 그만큼 피곤해서일지 모르겠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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