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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금의 탄식 "위험 감수하고 투자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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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인으로서 안 해본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했던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웅진그룹 윤석금(68) 회장이 지난달 31일과 1일 연 이틀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윤 회장은 검찰 조사에 앞서 그룹 내 주요 임원들에게 33년간 웅진그룹을 이끈 기업인으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그룹 내 계열사를 통한 부당지원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임원들에게 “기업에서 안전한 투자는 거의 없다. 미래를 보장하는 일도 없다”며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 것을 법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도 했다. 윤 회장은 “ ‘대한민국 경영자들의 교과서’가 되고 싶은 꿈을 꿨었다”는 말도 했다. 그는 “한 기업이 성공하면 그 기업과 관련된 사돈의 팔촌까지 평생 부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웅진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 윤리적이고 공정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경영 소신도 2007년 인수한 극동건설이 도화선이 된 그룹 경영위기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현재 그가 받는 혐의는 사기와 배임이다. 먼저 사기 혐의는 웅진홀딩스가 지난해 9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두 달 전 발행한 1000억원대의 기업어음(CP)이 문제가 됐다. 법정관리를 신청할 정도로 회사가 부실해져 상환 능력이 없는 걸 알면서도 1000억원대의 CP를 발행한 건 부정거래 행위라는 의혹이다. 하지만 웅진 관계자는 “당시 웅진홀딩스의 신용등급은 A등급으로 어음 발행 자격(B등급)을 상회했고 법정관리를 검토하기 시작한 시점도 9월 하순쯤이 돼서였다”고 말했다.

 배임 혐의는 올해 2월 영업정지된 서울저축은행 때문이다. 윤 회장이 개인 돈으로 인수한 서울저축은행에 계열사가 960억원을 부당 지원하게 해 결과적으로 계열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그는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은행장과 오너 회장 몇 사람의 비리로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게 기업가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서울저축은행을 살리기 위해 개인재산 800억원을 넣은 뒤 4개월 뒤 저축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 기준에 맞추기 위해 계열사를 통해 960억원을 투자하게 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불과 1년 새 존경받는 경영인에서 각종 경제 범죄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 자신의 처지를 지인들에게 탄식해왔다고 한다. 그는 27살 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업을 시작해 전 세계 세일즈맨 중 가장 판매를 잘하는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며 사업 밑천을 모았다. 이후 직원 7명과 함께 차린 출판사 웅진싱크빅을 모기업으로 식품, 정수기, 화장품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극동건설을 인수하고 태양광사업 투자가 실패하면서 순식간에 추락했다. 윤 회장 역시 “기업을 키워내야 한다는 일념에 건설과 태양광 사업을 시작한 게 패착”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지난해 9월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윤 회장은 법정관리 신청 당시 고의부도설이나 재산 빼돌리기 같은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법원과 채권단은 대부분 혐의 없음이란 결론을 내렸다. 윤 회장은 최근까지도 지인들에게 “최소한의 자존심은 회복했다”며 “작으면 작은 대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며 재기를 모색해 왔다.

장정훈·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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