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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와 화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잿더미속의 희비쌍곡선-.
이것은 지난17일 불타버린 반도-조선 아케이드의 한 토막 후일담이다. 금고속의 보석이 고스란히 영롱한 빛을 보이고 있어 환호성을 지르는 상인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 쪽에선 숯덩어리가 된 다이어먼드를 주워들고 탄성을 질렀다. 다이어먼드는 경도가 강할 뿐, 불엔 약한 것이 상식이다. 1천도(C) 이상이면 견디지 못하는, 그것은 한 알의 탄소에 지나지 않는다.
화재는 대개의 경우, 발화 1시간이내엔 9백27C(1,700도F)이다. 그러나 6시간이 경과하면 1천1백77도C(2,150도F)에 이른다. 아케이드의 화재는 거의 1천도C에 달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모든 금고는 그만한 내열성을 예상하고 설계된다. 1917년쯤에만 해도 금고는 6면에 물을 채워두는 방법으로 설계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파이어·푸르프] 특허품이었다. 그러나 화재 속에선 급격한 열도의 충격 때문에 그 금고의 물은 김을 펑펑 뿜다가는 폭발하곤 말았다.
그 후에 등장한 금고는 화학결정체를 그 안에 놓아두는 것이었다. 화재로 인해 가열되면 이것이 수증기로 변해 그 보관품을 불길 속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순간의 문제일 뿐이다. 노도와 같은 화염 속에선 별로 안전성이 없었다.
최근의 금고는 이보다 진일보했다. 발화도 2시간동안 1천10도C의 불길 속에서 종이조각을 보호할 수 있다. 처음 1시간30분동안은 2천도C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게다가 10m 높이에서 떨어져도 그 금고는 말짱했다. 물론 이것은 미국 금고제작협회의 특허품으로 등록된 특제품이다.
그러나 의외의 압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금고가 있었다.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었을 때, 그것만은 허허한 탄진위에 남아 있었다. 제국은행의 금고실(Vauts)-. 그 제국은행은 폭심에서 불과 3백m도 못되는 곳에 있었다. 금고실의 문에 상처가 조금 났을 뿐이었다. 그 금고실의 벽두께는 6인치.
그러나 수소폭탄에 견디어 내는 금고실은 아직 없다. 금고 자체의 최고로는 철분이든 바위의 속을 파낸 것. 뉴요크시에나 있을 뿐-. 이 속엔 귀중한 기록들, 예술품들을 보관하고 있다. 귀금속도, 돈도 아닌 것이 퍽 아이러니컬하다. 역시 인류의 최고가치는 물질보다는 정신이라는 교훈같기도 하다.
화재가 요즘같이 잦은 세상엔 금고의 보급을 국가적으로 장려라도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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