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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미술로 발견한 한국…내 삶의 자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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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돌아가신 곽인식 선생이나 이우환씨 같은 화가들과 사귀며 한국을 발견했지만 이제는 일본보다 한국을 더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죠. 한국을 배우면서 일본 역사를 다시 깨우치고 나를 찾게 됐습니다. 내 삶의 은인이랄까요."

조국 일본보다 이웃인 한국을 더 잘 안다고 말하는 우에다 유조(上田雄三.52)는 도쿄 긴자에서 '갤러리 큐'를 열고 있는 화상 겸 큐레이터다.

1976년 처음 한국을 다녀간 뒤 한국통이자 지한파 미술인으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타이완.인도 등 아시아 미술계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이 지역의 미술과 문화 교류에 전문가가 됐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 작가를 묶은 다양한 전시회를 꾸렸던 그는 2000년 제3회 광주 비엔날레에서 아시아 부문을 맡아 기획을 담당하기도 했다.

서울로 떠나기 전 안성금.육근병씨 등 7명의 한국 작가를 초대한 전시회를 개막했다고 덧붙인 그는 "내가 일본에 소개한 한국인 미술가가 60명쯤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요즈음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바다를 건너 다닌다는 우에다는 "지난 27년 동안 좋은 한국인들과 교유하며 얻은 마음과 정신이 내 최대 재산"이라고 말했다.

이번 서울 방문은 그에게 남다르다. 오는 6월 16일부터 9월 15일까지 프랑스 파리 기메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66)의 회고전을 확정하고, 그에 대한 기록영화인 '두 개의 국적을 지닌 남자' 촬영을 지켜본 뒤 자신이 인사동에 설계하고 있는 학고재의 개막식 행사 내용을 의논하기 위해 왔다. 한국계 건축가인 이타미의 회고전을 기획한 그는 "피는 다르지만 고향 선배인 이타미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동안 아시아 지역의 미술전을 기획하며 문명교류사를 다시 생각해 봤죠. 실크로드를 거쳐 동쪽 끝으로 전달됐던 문화가 이제는 거꾸로 흘러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요. 그래서 10월에 평창동에 있는 토탈미술관에서 '네오(新) 실크 로드-한국.일본.인도.중국'전을 엽니다. 한국과 일본의 미술을 중국을 거쳐 인도로 가져간다는 복안입니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우에다지만 미술계를 위한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광주 비엔날레 때 행정팀에 전문가가 없어 "억수로 고생했다"는 경험담을 들려주며 "한국 미술이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세밀한 분야까지 프로정신을 지닌 전문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은 작가들에 대한 지명도나 작품값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나 통하는 국제적인 그물망을 이루고 있는 편입니다. 21세기의 기대주인 무라카미 다카시나 모리 마리코.나라 요시토모 같은 작가들은 국내외에서 한결같이 한점 당 5억원에 팔립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한국 작가들은 국내 화랑가에서 유통되는 가격이 해외에서는 통하지 않아요. 국내 미술시장이 큰 편이지만 한정된 이들 사이에서만 거래되고 끝나지요."

그는 한국 미술이 이런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국제 비엔날레나 미술견본시(아트 페어), 경매에서 우리 화랑 소속이 아니라 해외 화상과 큐레이터가 계약을 하고 초청한 작가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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