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건보 부과체계 개혁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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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기효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장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 불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환자 본인이 실제 지급해야 하는 진료비 부담이 너무 크다. 건강보험료를 매월 꼬박꼬박 내도 진료비의 40% 가까이 자신이 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보험료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는 형편이 점점 나빠지는데 종전보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보험료를 더 내는 것처럼 느낄 때 국민은 절망한다. 실직 또는 퇴직해서 소득이 끊겼는데도 건보료는 오히려 더 오른다. 전셋값이 올라 빚내서 집을 사도, 생업을 위해 50만원짜리 중고차를 사도, 취직을 못해도 30살이 되면 건보료는 오른다.

민원인이 건강보험공단에 찾아가 따져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듣기는 여전히 어렵다.

 혜택이 동일하고 2003년 건강보험 재정이 통합됐음에도 직장과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부과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 문제의 근원이다. 국민건강보험이 기본가치인 사회연대 정신의 고양은 고사하고 근로소득자 대 자영자, 청장년 대 노인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부과체계를 근원적으로 수술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향후 의료비 폭증을 불러 올 초고령시대에 대비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 확충을 위해서는 건강보장세·소비세 등 보험료 외의 재원 비중을 늘려야 한다. 또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중한 임금 기반 보험료 비중을 줄이고 사업·이자·배당·양도·상속 등 모든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재원 조달 기반을 넓힐 필요가 있다.

 10년 넘게 끌어온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이유는 없다.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모든 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하자는 소득 중심의 단일화 안이 이미 제안됐고 기본 방향에 대해 대다수 학자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지역가입자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고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률도 높아져 소득 중심의 부과 단일화 여건도 성숙해 있다. 더구나 정부 국정과제인 정부 3.0 구현을 통해 국세청의 정보를 공유해 이를 건강보험료 부과에 적용하면 지역가입자의 낮은 소득파악률도 더 이상 개혁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건강보험 보험료 부과체계의 개혁은 우리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필수조건이다. 불공정성의 해소, 사회연대와 생애재분배 원칙의 구현, 재원 조달의 효과 제고, 그리고 건강보험 관리의 효율성 제고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 중증질환 등 보장성 강화에 소요되는 재원을 합리적으로 조달하기 위해서도 부과체계는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

이기효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