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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휴가 네 가지를 바꾸는 발칙한 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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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9일부터 4박5일 여름휴가 중이다. 짧게, 국내에서, 국정 현안을 챙기며, 하반기 청사진을 구상하며 보낸다는 네 가지 점에서 역대 대통령들과 일맥상통한다. 국정 현안이 산적하니 그럴 수밖에 없고 개인의 휴식보다 맡은 일을 중시하는 한국적인 정서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앞장서서 한국의 휴가 문화를 확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휴가를 아예 보름 정도 다녀오는 것이다. 대통령이 모범을 보이면 휴가 문화 확산을 통한 서비스업 내수산업 촉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취임 이후 휴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일했으니 이 정도 휴식과 재충전은 필요하다. 국정 공백은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 독일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총리는 매년 한 달 정도 오스트리아의 시골에서 휴가를 보냈는데도 국정 공백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친김에 휴가 때 한국을 떠나지 않는 ‘텃새’ 풍속도 바꿔보면 어떨까.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총리 시절 중동 국가인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로 휴가를 다녔다. 그런 그가 퇴임 뒤 중동평화특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게다. 관광대국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는 대통령 시절 미국으로 개인 휴가를 떠났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는 법.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매끄러워진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 대통령이라면 필리핀이나 태국 등 6·25전쟁 참전국을 찾아 휴가를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몽골의 물가나 산중, 역사 유적, 또는 국내에선 볼 수 없는 초원을 찾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한국의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소중한 영감을 얻는다면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대통령이 외국 관광 홍보나 하는 게 아닌가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여왕은 몇 년 전 프랑스 서남부 시골에서 휴가 중 반소매 셔츠에 샌들 차림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노점 앞에 줄 서 있다 카메라에 잡혔다. 이를 본 사람들이 이런 소박하고 자유로운 여왕이 사는 인어공주의 나라 덴마크로 몰릴까, 아니면 그가 잠시 쉬어 간 프랑스 시골 마을을 굳이 찾아갈까를 곰곰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다만, 휴가 때는 오로지 쉬는 데만 열중하도록 당부드리고 싶다. 휴가는 채우는 게 아니고 비우는 것이니까. 쉬고, 노는 것도 정치력이며 국민을 안심하게 하는 리더십일 것이다. 쉬면서 회복한 기운을 바탕으로 휴가 뒤에 용맹정진하면 어려운 문제도 쓱쓱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하반기 구상도 술술 풀릴지 모른다. 이번 여름 모두가 그런 휴가의 힘을 느껴보기를.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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