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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부엌에 "검은 파동"|연탄기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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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년만에 또 연탄소동이 일어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기름 때문에 연탄이 안 팔린다고 탄광업계가 아우성을 쳤는데 이제는 연탄을 살래야 살수가 없다고 소비자 쪽이 야단이다. 또 월동연료사정은 끄떡없다고 장담하던 정부당국은 뒤늦게 허겁지겁 대책을 강구한다고 법석이다. 상공부주무국장이 해임되고 경제기획원에서는 매일아침 상공·교통부와 서울시 당국자 및 탄광·연탄제조업계 대표들이 모여 그날 그날의 연탄수송·저 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파동의 원인은 결코 어느 한 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산에서 수송, 저 탄, 소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배태되었으며 따라서 연탄파동은 오고야 말 것이 온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생산부진에 수송 난이 겹치니까 저탄 장이 겨울철 성수기를 맞아 바닥이 난 것이며 여기에 탄값인상을 노린 업자들의 농간까지 곁들여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산탄 량 계속 줄어>
석탄생산은 67년의 1천2백43만6천t을「피크」로 해서 계속 줄어들고 있다. 68년에 계획량 1천2백만t의 85%밖에 안 되는 1천24만2천t으로 67년보다 2백20만t이나 줄어들었고 금년 들어서는 지난 10월말 현재 계획량보다 1백50만t이 적은 8백32만3천t밖에 캐지 못했다. 연간계획량을 작년과 같은 수준으로 잡은 상공부는 이제 와서 계획량미달이 불가피할 것으로 단정, 1천31만8천t까지는 생산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나 지난 2년 동안의 월 평균 생산량이 80만t을 약간 넘는 정도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연말까지 1천만t을 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전망되고 있다.
생산자체가 부진하니까 저탄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름에 눌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석탄소비, 특히 가정의 연탄소비는 도시인구 및 주택증가, 연탄소비지제한조치 철폐에 따른 소비지증가 때문에 매번 30%씩 증가하는데 생산이 줄어드니까 저탄량이 감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0월말 현재 산 원 저탄량은 79만6천7백t으로 작년 동기보다 16만2천t이 적다. 또한 역 두 저탄량은 지난 12월18일 현재가 30만9천1백t으로 작년의 40%도 채 안되며 서울·부산·대구 등 주요소비지저탄량은 67만8천t으로 작년보다 18만7천t이 적다. 특히 연탄소비가 가장 많은 서울의 경우 저탄량이 작년의 절반 조금 넘는 27만t에 불과하며 춘천은 겨우 8백89t으로 사실상 바닥이 나 있다.
결국 산 원에서 소비지에 이르기까지 저탄량이 모두 작년수준보다 훨씬 미달되어 있는데 전국소비지저탄량은 겨울철 수요량의 17일분, 서울은 15일분이 될까 말까 한 분량이다. 저탄 장이 이처럼 바닥이 났거나 아니면 얼마 안가 바닥이 날 지경에 이른 원인은 생산감소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작년만 해도 1백10만t이 넘는 이월소비지 저 탄을 갖고 넘어왔는데 금년에는 그것이 85만t으로 줄었으며 월동을 앞두고 탄가인상 설이 나도는 바람에 가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서울의 경우 작년 10월에 하루평균 2백89만개에 불과했던 연탄소비(판매기준)가 금년에 4백20만개로 50%가량 늘었으며 월 3백70만개(작년 2백75만개) 12월 3백50만개(2백77만개)로 계속 작년수준을 하루 1백만 개 가량 초과하고 있다.

<산지엔 원탄 더미>
연탄파동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수송 난에서 찾아야 한다. 전국적으로 하루 9백 량, 서울 4백 량의 화차를 무연탄수송에 배정하겠다던 정부방침에도 불구하고 그간 전국에 하루평균 8백 량 미만, 서울은 3백50량 내외를 배정해 왔을 뿐이며 그나마 김장·「시멘트」·조곡 등 다른 긴급물자수송에 밀리기가 일쑤였다.
게다가 철도선 당국은 적 하가 용이한 산지만을 골라 화차를 배정함으로써 어떤 산 원에는 화차를 기다리는 석탄더미가 수만t씩 쌓여 있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또 화차를 하역하기 쉬운 소비지에만 집중 배정하여 서울만 하더라도 동부인 이문동 저탄장 사정은 좋은 편인데 서부인 수색 저탄장은 거의 바닥이 나는 모순을 빚어내고 있다.
화차배정 량 자체가 모자란 데다가 그것마저 적 하와 하역이 편리한 곳만을 골라 배차된 것이다.

<선합 대책 세워야>
기회만 있으면 값을 올리려는 업자들의 농간도 간과할 수는 없다. 굴지의 연탄제조업자인 서울의 삼표 연탄이 하루 1백50만개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고 있으면서도 1백만 개밖에 생산하지 않고 있었는가 하면 다른 업자들도 생산량을 고의로 줄이거나 아니면 기준열량과 규격에 훨씬 미달되는 연탄을 제조 판매해 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뿐이 아니다. 저탄량을 고의로 적게 보고함으로써 당국이 더 많은 화차를 배정하고 비교적 싼 석공 탄을 더 많이 할당해 주기를 바라는 업자들도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품귀의 기미만 있으면 이번에는 연탄판매업자들이 운반비 등 각종 명목을 붙여 폭리를 보려 드는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요인이 겹쳐 발생한 연탄파동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는 각종 비상대책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 생산과 수송을 독려하기 위해 관계직원들을 탄광과 주요역사 그리고 연탄공장에 파견하고 당분간은 가정용 소형연탄만을 중점 제조, 공급키로 했다.
또한 약40만t에 달하는 발전소주변 저탄량을 민 수로 전용키로 했다. 주요소비지 저탄 현황 가운데 마산·군산 등 지방소도시저탄량이 이례적으로 많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연탄문제는 이와 같은 단기대책 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근원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월동기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올해는 그런대로 석탄의 집중 생산수송과 연탄공장 「풀」가동으로 넘길 수 있겠지만 석탄산업이 채산이 맞지 않아 생산이 감소되는 한 매년 이러한 파동은 되풀이될 우려가 있다. 석탄의 생산원가는 t당 2천8백34원으로 4백원이 적자이며 따라서 증산을 할수록 결원은 늘어난다. 탄가인상 설의 배후에는 이러한 석공의 고충이 도사리고 있는데 정부가 인상 설을 일축해 버린 지금 어떤 장기대책을 모색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이를테면 작금의 연탄파동은 ①연료전환정책을 너무 무정 견 하게 추진함으로써 석탄산업의 사양화를 촉진하는 한편 ②석탄산업육성시책마저 미흡하여 생산이 위축됨으로써 공급부족 사태가 빚어졌고 ③그나마 생산된 석탄과 수송 및 유통과정에서 관계부처간 그리고 정부당국과 업계간의 손발이 안 맞았던데 그 원인이 있고 따라서 이 기회에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널리 제기되고 있다.
특히 생산부문에 대한정부당국의 무성의한 지원태도는 시정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작년보다 6억 원이 적은 10억 원을 비수요기생산유지 자금으로 책정한 재무부가 그나마 성수기가 된 10월에 들어서야 방출하기 시작, 아직도 2억 원 이상을 남기고 있고 개발기금 5억 원은 산업금융채권 소 화가 부진한 것을 핑계로 겨우 5천만원을 방출했을 뿐이니 어떻게 생산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다. <변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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