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의 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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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근대화를 말할 때 흔히들「모빌리티」(mobility)를 그 특징으로 든다.「유동성」이라고나 할까….
지리적인 유동성이 크면 사람들이 자주 자리를 옮겨 동에서 서로, 시골에서 도시로, 부산히 움직인다. 사회적인 유동성이라는 것이 겹치게 되면 사회계층의 밑바닥에서 출발해서 정상에까지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가다 보면 음지가 양지로 되는 수도 있다. 이런 두 가지 유동성이 가장 큰 나라로서 대개 미국을 꼽고, 미국의 힘과 눈부신 발전의 근원을 거기서 찾는 이들도 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도 어지간히 큰 유동성을 보여 왔다. 국권이 왔다갔다했고, 새로운 종류의「커리어」가 수없이 생겨났고, 큰 전쟁을 치렀고, 소규모의 민족이동이 있었고- 한국인 본래의 민족성과는 관계없이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진「모빌리티」의 정도가 결코 미국의 그것에 못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본적, 현주소, 생년월일로 시작하는 한국인의 이력서가 흔히 다채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동난 이후의 이력을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극히 드물고 또 귀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신문기자, 언론인으로서 반세기를 살아왔고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저술가로, 시사평론가로, 또 명성 높은「칼럼니스트」로 건필을 휘두르고 있는 직석 유광렬씨가 바로 그런 분이다.
그분의 필재가 뛰어났고「저널리스트」로서의 견식과 경험이 세인의 존경을 받아 온 것은, 반세기의 공으로 미루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분의「칼럼」의 항간에서, 또는 간간이 TV「스크린」에 바치는 그분의 용모에서 스며 나는 온유한 인품이 또한 드물고 귀하다.
민족수난의 마디마디를 몸소 겪어 왔고, 엄습해 오는 유동의 소용돌이를 조용히 참아 내면서, 끝내 지켜 온 마음의 균형과「커리어」에 대한 충성이 놀랍다.
유동성을 결한 사회는 답답하고 생동 력이 나올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국민의 다대수가 설 땅을 대하지 못한 채 동분서주할 때, 전통이고 문화이고 뿌리를 박을 수는 없다. 고고의 향기를 풍겨 주는 유옹의 건 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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