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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판자촌에 큰불 129동 태우고 8명 화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7일 상오1시35분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4(13동12반) 청계천변 무허가 하숙집인 함경도집(주인 문용희·38) 2층 8호실에 불이나 이웃판잣집 1백29채를 불태우고 1시간30분만에 꺼졌다. 이날 불은 다락다락 붙은 판잣집촌에 삽시간에 번져 이철룡씨(48·충북 단양군 매포면) 등 8명(남자6명·여자2명)이 잠자다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불타 죽고 우준남씨(31·종로구 명륜동 산1) 등 2명이 중화상음 입고 근처 병원에 분산 입원했으며 3백47가구 1천5백여명의 이재민은 신고국민학교에 수용 중이다. 그밖에 불에 타 죽은 사람의 신원은 모두 무허가 하숙집에서 자던 사람들이라 잘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불은 북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 잠자다가 깨난 주민들은 골목길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천계천을 건너 대피하느라고 수라장을 이루었다.
불은 「합경도집」2층 8호실에 피워둔 연탄난로가 파열, 「베니어」벽에 인화, 이웃 판잣집촌으로 번져 겉잡을 수 없었다. 불이 나자 경찰은 서울시내 소방차 47대를 동원,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소방도로가 없어 화재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는데다 판잣집 벽들이 「베니어」로 되어 있고 지붕은 기름종이(루핑)로 덮여 있어 불길을 잡기가 어려웠다.
불이 나자 잠자다 깬 백옥임씨(29·여)는 6개월된 어린 아들 정진영군을 안고 불길을 피해 3m가 넘는 2층에서 뛰어내리다가 발이 부러졌다.
이날 불이난 것을 처음 목격한 김근수씨(54·16통6반)에 의하면 잠자다가 『불이야』하는 고함을 듣고 뛰어나왔을 때 불길이 문 여인 집에서 치솟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주민 김원자씨(30·여)는 불길에 눌라 옷가지하나도 못 갖고 나왔다면서 북새통에 뿔뿔이 헤어진 가족들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잠자다가 화재를 당한 주민들은 미처 가재도구를 끄집어 내지 못하고 불이 꺼진 뒤 이재민들은 잿더미 속에서 가재도구 한 개라도 더 찾아내려고 함박눈을 맞으며 불탄자리를 파헤치고 있었다.
이 일대는 작년 봄에도 불이나 1백여동의 판잣집이 불탔는데 그뒤 다시 이재민들이 무허가 판잣집을 지어 살고 있으며 현재는 8백여동으로 늘어나 6천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경찰은 피해액을 1천여만원으로 보고 「함경도집」문씨를 중실화협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이날 불이 ①밀집한 판자촌에서 한밤 중에 불이 났고 ②판잣집의 대부분이 2층으로 되어있는데다 좁은 사닥다리로만 왕래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갑작스런 불길을 이루어 소사자가 더 많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설동 국민학교 운동장에 수용된 이재민들은 때마침 내리는 눈을 맞으며 불이난지 12시간만인 17일 낮12시반에야 적십자사에서 구호품으로 나온 남비·솥 한 개와 건빵 한봉지씩을 받았다.
16통4반에 살다가 불나기 3시간 전에 성리역쪽으로 이사를 간 강선옥씨(23·여는 그동안 세 들어 살고 있던 주인집 김영자씨 보기가 민망스럽다면서 수용소에서 같이 떨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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