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빌딩」밑의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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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년전쯤 일인가 보다. 결혼 전 겨울 아기아빠와 함께 밤의 소공동 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 신축「빌딩」밑을 지나다가 횟가루와 흙이 범벅이 되어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어 있던 두 사람의 머리위를 덮쳤다 흡사 잿더미에서 빠져 나온 생쥐처럼 두 눈동자만 반짝거렸던 모습을 서로 보고는 얼빠진 사람들처럼 웃어댔던 일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은 흔해빠진 『공사 중 불편을 끼쳐드려 미안합니다』만 표지하나 없었던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나날이 치솟는 서울의 「빌딩」숲을 지나노라면 확실히 무언가 달라진다는 느낌은 든다. 그러나 나는 그 많은 「빌딩」들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있는가는 잘 모른다. 다만 의례적으로 써붙이는 「미안합니다」란 표지가 눈을 자극할 뿐이다. 보행에 불편만을 주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건지 더 큰 불행을 함께 알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제신문을 보고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전에는 H「빌딩」을 지을때 그 밑을 지나던 사람이 떨어지는 건축도구에 맞아 죽었다던가 하는 일이 있어 새로 짓는 「빌딩」밑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이재 신축하는 「빌딩」밑을 지날 일이 있는 사람은 머리 위에 크고 두꺼운 철판이라도 쓰고 가야할 판이다. 도시 사람들에겐 「비명횡사」의 조건이 하나 늘어난 셈이다.
그 어마어마하게 높이도 솟는 집을 짓는 사람들이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을 막아주는 안전조치에 그렇게도 인색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불과 1㎏의 무게를 지탱 못하고 행인의 머리 위로 잡물을 쏟아 놓을 만큼 허술했던 안전조치, 그 밑을 안심하고 걷다가 떨어지는 날벼락에 다치고 죽고 그리고 난후 누구를 입건하고 구속하면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지? 다른 사람이 짓는 수백개의 「빌딩」보다 자기의 한 생명이 귀하다는 사실을 그네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먼 지점도 쓰는 건 「성장」에 따르는 흐뭇한 애교로도 통할 수 있을지 모른다. 죽고 다치고 하는건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아침 출근하시는 아빠에게 새로 짓는 「빌딩」밑을 조심하라고 부질 없은 걱정을 한마디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하늘 무너질까 걱정 안되나』하시면서 힁하니 나가 버렸다. 【백혜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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