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vs 메인스트리트 … 미 연준 차기 의장 격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차기 의장이 되기 위한 경쟁이 2파전으로 좁혀졌다. 래리 서머스(59)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과 재닛 옐런(67) Fed 부의장이 주인공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둘은 모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쪽 사람이다. 서머스는 2009~2010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맡았다. 오바마의 초기 경제정책을 지휘했다. 옐런 부의장은 버냉키에 의해 2010년 Fed 이사가 됐다. 양적완화(QE)를 사실상 주도했다. 두 사람은 Fed 100년 역사상 유례없는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이전까지 경쟁은 대중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조용히 이뤄졌다. 그러나 서머스와 옐런이 진영을 갖추며 양상이 달라졌다.

 서머스 진영의 주력은 월스트리트다. 금융회사 CEO와 주요 주주들은 옐런을 직·간접 견제한다. 그들은 “옐런이 너무 경제 성장(일자리)에 치중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돈 가치를 훼손해 월가가 빌려준 채권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버냉키가 QE 축소 및 중단 프로세스를 발표한 배후에 월가의 우려가 한몫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우군을 의식한 듯 서머스는 “QE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실물경제에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최근 비판했다. QE를 주도한 옐런에 대한 공격인 셈이다.

 반면 옐런은 메인스트리트의 지지를 받고 있다. 금융이 아닌 제조업·노동계와 가깝다는 얘기다. 이들은 돈 가치를 떨어뜨려서라도 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쪽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스트리트에 대한 반감이 커진 점을 활용해 “서머스가 씨티그룹 등의 고문을 맡고 있다”며 “금융 자본의 대변인을 선택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상원의원 54명 가운데 20명이 지난주 서머스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놓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월스트리트에 비판적인 인물들이다. 또 옐런 지지자들은 “Fed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을 뽑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느 쪽이든 승자는 내년 2월 1일 버냉키한테서 금융통화 정책 권한을 넘겨받는다. 그는 금융·재정 위기 때문에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는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에게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도 한다. 적어도 10년 동안 세계 경제가 Fed 차기 의장의 철학에 좌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승자는 어느 쪽일까. MSNBC는 “오바마가 서머스에게 기울었다는 소문이 워싱턴 정계에 돌고 있다”고 지난 26일 보도했다. 그러자 옐런 진영이 “서머스가 1990년대 후반 재무장관을 맡아 금융 규제를 풀어주는 바람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양측의 경쟁이 달아오르자 백악관 쪽은 “아직 누굴 차기 의장에 지명할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진화에 나섰다.

 두 진영의 갈등과 논쟁이 첨예하다 보니 제3의 후보가 어부지리로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버트 코커 공화당 상원의원은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이 논란을 일으킨 인물은 지명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차기 의장 지명전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현 의장인 버냉키의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이 주로 보는 인스티튜셔널인베스터는 “시장이 차기 의장 지명전을 주목하는 바람에 버냉키의 ‘소통의 힘(발언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QE 축소와 중단이 버냉키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월스트리트 vs 메인스트리트=19세기 후반 산업화 이후 미국 정치·경제 지형을 결정한 주요 갈등과 경쟁 프레임. 제조업을 중시하는 메인스트리트와 금융 자본을 대변하는 월스트리트 중 어느 쪽이 재무장관과 Fed 의장, 백악관 경제팀 등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미 경제 운용 방향이 결정됐다. 1920년 말 대공황 때부터 메인스트리트 쪽이 장악해 70년대 말까지 주도권을 쥐었다. 다양한 금융 규제와 완전 고용 달성을 법제화했다. 반면 80년 이후 30년 동안은 월스트리트 쪽이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금융 규제를 풀고 일자리 창출보다 돈의 가치를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