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온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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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것은 하나의 희극적인 재판을 방불케 한다. 지난 1월부터 8월 사이에 재판을 받은 공무원 범죄사건은 모두 1천6백34건.
이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불과 8%이다. 92%는 집행유예·벌금형으로 풀려 나왔다.
이것은 법의 관용이기보다는, 법의 악용인 느낌이 짙다. 이른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사회적인 요구에 의해서 제정되었다. 공무원의 부패를 지탄하는 여론을 기술적으로 합법적으로 그리고 유효하고 능률적으로 실현한 것이 바로 이 법이다.
공무원 범죄의 내용을 보면 수회·공문서위조·업무상횡렵·배임·도박 등이다. 이 대부분은 국민의 혈세를 남용하거나, 착복한 경우이다. 다라서 그들의 범죄는 한 개인과의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적어도 국민에의 범죄인이다.
그렇다면 일반 범죄와는 구별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바로 법의 양식이며 정신이기도 하다.
가령 과실치상이나 절도죄에는 일반적으로 엄한 형이 내려지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 범죄는 적어도 수백만원의 국고손실을 가져왔을 경우가 많다. 이때의 법은 어느 쪽이 더 준엄해야 할지는 자명한 이치이다.
공무원 범죄에의 가벼운 형은 오히려 사회악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우선 그것은 범죄의 기준을 문란하게 만든다. 따라서 범죄의 규모를 확대시킨다. 또한 법의 위신을 타락시킬 것이다.
시민은 이런 상광에서는 「관」에 대한 불신감을 씻을 수가 없다. 「관」도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스스로의 부패를 막을 길이 없다.
당국은 부패를 근절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제도개혁을 연구 중에 있다. 그러나 그 제도적 통제는 사회적 통제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효과적인 결과를 낳기 어렵다. 사회적 통제란 법의 평등한 집행에 있다.
법원은 언제나 사회의 부패를 막는 냉장고의 역할을 맡는다. 어에나 피드백 장치를 갖게 마련이다. 그것은 상온을 유지시켜주는 자동온도조절기이다. 그리고 최저온의 층에도 온도가 오르면, 그 냉장고의 기능은 마비된다.
법의 집행은 바로 이 피드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냉장고는 어딘지 고장이 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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