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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CJ 봐준 게 국세청 차장뿐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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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호 02면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불법 비자금 조성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관계 인사들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CJ 측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막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3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정부 때 실세였던 P씨에게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이 회장의 진술도 검찰은 확보했다고 한다. 검찰은 P씨 등 이명박정부 들어 핵심 요직에 있었던 일부 인사가 CJ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수사 및 세무조사 과정에 개입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CJ게이트’로 번질 것인지 주목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CJ 비자금 수사가 박근혜정부 들어 뒤늦게 이뤄진 배경과 이유에 대해서도 국민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5년 전인 2008년 이 회장의 비자금 관리인 격이었던 이모 재무팀장의 청부살인 사건이 불거진 뒤 검찰은 적어도 세 차례나 수사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당시 검찰은 이 팀장으로부터 이 회장의 비자금 규모·내역 등이 상세히 기록된 USB를 압수해 내용 분석까지 끝냈지만 수사를 하지 않았다.

검찰의 미심쩍은 태도는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2009년 5월 대검 중수부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CJ 회장의 부탁으로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한 정황을 발견했다. 검찰은 1700억원가량의 탈세 내역이 담긴 자료를 국세청 압수수색에서 확보했지만 “수사의 본류가 아니다”는 이유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검찰은 또 이 팀장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이 팀장이 관리한 이 회장의 비자금 규모가 수천억원대에 이른다는 법정 진술을 확보했음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단순히 검찰의 능력 부족이라고 보기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들이다.

그래선지 CJ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이명박정부 때 검찰의 주요 보직을 맡았던 특정 대학 출신들이 사실상 수사를 막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이런 주장이 사실일 경우 이는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만에 하나 금품이 오갔다면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단죄를 받아야 한다.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이 큰 상황인 만큼 수사의 진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라도 검찰 내부의 불법행위는 단호하게 조사해야 한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성난 민심의 격랑에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위기는 검찰의 그릇된 관행과 조직문화가 총체적으로 누적돼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채 총장의 이런 발언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으려면 수사팀의 용기와 뚝심이 필요하다. 검찰 개혁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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