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그레이트 월스트리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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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안 팔려 사원들에게 할당 판매를 시키는 건 흔한 일이다. 법 위반 시비도 있다지만 물건이 팔려야 회사가 살고, 그래야 월급을 줄 수 있다는데 어찌하겠나. 그럼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등장했다는 중국식 해법을 하나 소개한다. 직원들에게 인당 최대 60만 위안(약 1억800만원)을 조달해 오라고 닦달한다. 이를 달성하는 직원은 계속 고용한다. 그렇지 못한 직원은? 가차없이 자른다. 저축한 돈이 없으면 지인의 재력이라도 빌려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가혹한가. 과거 한국에서 퇴출 위기에 직면한 은행의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증자하는 데 보태라고 압박한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중국에서도 이게 뉴스라면 한국의 경제위기 때처럼 경제 전반에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금융시장 또한 비정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국 경제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위기에 빠졌다는 주장부터 위기가 닥치고 있다거나, 서방의 음모나 과장일 뿐이라는 견해까지 정말 가지가지다.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전지전능한 공산당과 탁월한 관료들이 이런 걸 통제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이가 적잖다. 반대로 경제위기가 정치·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것이란 붕괴론 신봉자도 없지 않다.

중국의 3대 악재로는 부동산 거품, 지방정부 부실, 그림자금융이 손꼽힌다. 그 핵이자 줄기는 금융이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빼기 위해 은행 대출 규제를 강화한 뒤 은행 대출 이외의 수단으로 돈을 조달하는 그림자금융 시장은 한층 커졌다. 지방정부의 부실도 그렇다. 위탁대출 같은 그림자금융의 중개자가 됐다가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했다. 경제가 위기라면 그 핏줄인 금융의 어느 지점에선가 고장이 났을 법하다.

중국의 금융 파워는 경제력의 반영이다. 반(半)식민지 상태에서 내전과 전쟁을 겪던 시절에도 중국은 일본보다 큰 경제 규모를 유지했다. 가치 비교의 잣대로 쓰이는 국제 기어리-카미스 달러(Geary-Khamis dollar)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일본이 중국을 누른 기간은 1961~91년뿐이다.

경제력과 함께 급성장한 중국의 금융은 ‘그레이트 월스트리트(Great Wall Street)’라고 불린다. 중국을 상징하는 만리장성(Great Wall)과 미 금융가에서 유래한 월스트리트(Wall Street)를 합성한 말이다. ‘만리장성 금융’쯤으로 번역된다.

그 덩치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금융 전문지 ‘더 뱅커’가 발표한 세계 1000대 은행(기본자본 기준)에선 중국 공상은행이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96개의 중국 은행이 이름을 올렸다. 금융회사의 규모를 비교하는 다른 잣대인 자산·시가총액 등으로 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주식시장 등 자본시장 역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30여 년간 큰 위기 없이 고성장을 지속한 성공의 역사 자체가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 지나친 자신감은 금물이다. 멈춰선 공단과 공장들,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부실 쓰레기의 독극물을 처리해 본 경험이 없지 않은가. 30년 무사고 운전을 했다지만 그 바람에 대형 사고 처리 경험이 전무한 운전자랄까. 다만 중국 정부가 자랑하는 강력한 통제와 동원의 신기(神技)가 이번에도 특효약으로 작용하길 바랄 뿐이다.

허귀식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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