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2020년 7대 제약강국을 꿈꾸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

세계 한인의사회가 최근 ‘한국 의료의 글로벌화’와 ‘신약 개발에 있어 의사의 역할’을 주제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총회에 다녀왔다. 선진 각국의 첨단 병원에서, 아프리카 오지의 이름 모를 천막병원에서 의료의 한류시대를 열고 있는 해외 한인 의사의 규모가 3만 명이나 된다. 여기에 더해 5000여 명의 동포 의과대학생까지 어우러진 글로벌 네트워크가 열어갈 미래가 기대된다. 귀국 길에 낭보를 접했다. 종근당에서 개발한 당뇨병 치료제 신약 듀비에정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최종 판매 승인을 받은 것이다. 신약은 10여 년간 최소 수백억원을 투자하고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등 여러 단계의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제약산업의 꽃이다. 1999년 7월 15일 SK케미칼의 국내 개발 신약 1호 선플라주(항암제) 이후 꼭 14년 만에 탄생한 20호 국산 신약 듀비에정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를 겨냥한 글로벌 신약 개발도 야심 차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이미 2003년 LG생명과학의 항생제 팩티브정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얻으면서 세계 10대 신약 개발국으로 공인받았다. 현재 동아ST의 수퍼항생제 등 여러 종의 신약 후보 물질이 세계시장 진출의 가장 높은 문턱인 FDA의 신약 허가 승인 단계에 진입해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이렇듯 국내 제약기업들이 세계시장에 들고 나갈 최고의 전략 무기는 결국 신약이다. 제약기업 연구소에서 잇따라 들려오는 신약 개발 낭보는 한국 제약산업의 글로벌 성공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생산기술 수준과 품질 관리 역량도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는 객관적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 글로벌 신약의 1년 매출이 10조원을 넘는 데서 보듯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정도의 폭발적 성장 기회를 거머쥘 수 있지만 제품 효능은 물론 기업의 투명성과 윤리성을 담보하지 않고는 세계시장의 문턱을 넘을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제약업계가 신약 개발 노력 못지않게 과거에 드리웠던 리베이트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점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에서는 자국민의 건강권 확보 차원에서 자국 제약산업의 생산 능력 확보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 역시 연구와 개발, 생산에서부터 판매·유통에 이르기까지 핵심 내수산업으로서 국민 경제뿐 아니라 건강 안보·건강 주권 측면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산업이다. 또 고부가가치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고의 연구·개발(R&D) 투자산업인 제약산업이야말로 창의성과 혁신성을 키워드로 하는 창조경제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2013년 현재 세계 20위권에서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국가 목표로 잡았다. 정부가 제약산업을 대한민국호의 미래 성장동력이라며 설정한 이 목표에 대해 어떤 이들은 불가능하고 허황된 꿈이라고 말한다. 지금 상황만 따지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언제 우리가 처음부터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가, LPGA 무대의 박인비가, 가수 싸이와 K팝이, 휴대전화 갤럭시가 세계 무대의 넘버 원이 될 것이라고 여겼던가.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기에 세계 최고가 되는 오늘을 맞이한 게 아닌가.

 한국의 제약산업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우수한 인력에 투자해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가 결합하면 분명 성취할 수 있는 꿈이다. 제약산업이 의료산업과 더불어 건강 주권의 지킴이 역할을 다하고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 산업으로 성장해 가려면 국민의 격려와 성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약업계는 ‘글로벌 세계 제약시장의 K-팜 시대’를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으로 혁신과 변화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