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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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겨울은 자기를 되돌아 보게 하는 계절이다. 한햇동안 부산하게 서두르던 일들에서 문득 깨어나 깊이 생각하고 자기만이 누리는 생활을 마련한다. 몇분의 여류들을 찾아 겨울이면 생각하고 또 하는 일들을 알아본다.
이번 겨울 백성희씨는 「악마릴리스」속에서 쉬고 있다. 해마다 가졌던 연말의 대무대가 없는 한적한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3년전에 한국연극상을 받을 때 「팬」 한분이 선사하신 화분하나를 뿌리돋는대로 제손으로 옮겨심었더니 이젠 열개두 넘어요, 화분수가.
겨울을 재촉하는 찬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흰「커튼」으로 가린 아늑한 실내에서 백성희씨는 꽃잎을 닦으며 귀에 젖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얘기한다.
『겨울무대는… 연극의 마지막 막은 언제나 쓸쓸한 것이지만, 더욱더 마지막 막이라는 실감을 몰아다주는게 겨울의 公演이죠. 분장을 지우고 텅빈 객석을 지나 극장문을 나서면 「크리스머스」로 들뜬 반짝반짝 색등이 빛나는 거리가 있고….』
국립극장은 금년말 공연으로 전진호작『임종자의 손』을 선정, 이틀동안 연습까지 했는데『예산이없으니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오랜만에 다시찾은 연극「팬」들앞에 연극다운 연극을 보여주기위해 노력해야할 시기에 연극육성은 고사하고 이런 푸대접이 어디있느냐고 백성희씨는 불평이 대단하다.
『연극60年이라지만, 겨울공연은 관객감기들고 배우감기드는 무대죠. 난방완비의 극장이 어디 있나요?』
내년이면 무대에선지 25년. 그해마다의 겨울처럼 백성희씨는 찬무대에서 열연하며 감기가들고싶단다.「테네시·월리엄즈」의『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에서「슈미즈」바람으로연기하다 페렴에 걸렸던겨울, 차범석의『산불』을 연기하던 겨울, 성남극장공연을 마치고나니 펑펑 내리는 눈이 너무도 좋아 신당동집까지 걸어오던 연극 초창기의 겨울…. 무대가 없는 금년겨울은 지난겨울이 그리워지는 겨울일뿐이다.<장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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