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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위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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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욱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 앞에 또 하나의 판도라 상자가 놓여 있다. 은행 위기다.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럴 가능성은 작은 듯하다. 뚜껑이 열린다면? 우리 경제는 바로 중상이다. 최소한 일본식 장기불황은 각오해야 한다.

 은행이 위험하다는 경고음은 진작 울렸다. 신한금융지주에서 전략을 총괄했던 최범수 박사는 “이대로 가면 은행들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연명단계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 자칫 위기가 닥쳐올 수도 있다고 덧붙이면서. 하영구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은 한 달여 전 한 인터뷰에서 “외환위기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여태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MB정부 시절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김종창 KAIST 교수도 “일찍이 보지 못했던 심각한 국면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경고음뿐만 아니다. 은행이 위험하다는 실제 증거도 속속 나오고 있다. 단적인 예가 순이익의 급감이다. 지난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8조7000억원, 2011년에 비해 무려 30% 가까이 줄었다. 그런데 올해는 훨씬 더 심각하다. 지난해의 반 토막으로 예상돼서다. 1분기 실적이 그랬다. 지난해 1분기 순이익은 3조3000억원. 하지만 올 1분기는 1조7000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2분기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다들 전망한다. 그렇다면 2년 연속 순이익 급락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만 볼 수 있었던 흉조(凶兆)다. 그나마 이 정도에 그친 것은 은행들이 갑자기 자산을 매각한 덕분이 크다. 그래서 생긴 특별 이익을 빼면 적자로 전락하는 은행도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순익 급감이 장기화된다는 거다.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조차 5년 후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의 6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쯤 얘기하면 은행이 흔들리는 게 뭐가 대수냐는 지청구를 들을 것 같다. 가뜩이나 은행에 대한 일반 감정은 좋지 않은 터 아닌가. “날씨 좋을 때는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거둬가는 곳이 은행”이라는 야유(?)가 괜히 나온 거 아니다. 하지만 어쩌랴. 금융은 우리 몸의 혈관이니 말이다. 혈관이 막히면 사람이 죽듯이 금융이 막히면 경제가 죽는다. 외환위기 때 우리 정부가 수십조원의 혈세를 은행에 공적자금으로 쏟아부은 이유다. 금융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게다가 금융은 그 자체가 고(高)부가가치 산업이다.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서비스산업이다. 은행이 위기를 맞아선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어쩌랴. 위험에 빠진 은행을 정상화할 묘수가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위기는 시간문제다. 이유는 이렇다. 해결책은 크게 세 가지다. 은행의 수익 기반이 늘어나든가, 비용을 줄이든가, 영업기반을 확충하든가. 수익 기반을 늘리려면 예금금리를 낮추거나 대출금리를 높이거나, 수수료 수입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의 수수료 파동이 단적인 예다. 금융감독원장이 수수료를 현실화하겠다고 했다가 정치권으로부터 된통 당했다. “(자신들은) 연봉 1억원을 받으면서 국민에게 손 벌리고 있다”는 비판에 최수현 원장은 한 발 물러섰다.

 비용을 줄이는 건 더욱 어렵다. 금융지주 회장의 연봉 깎는 건 쉽다. 다만 설령 30%를 깎아도 몇 푼 안 되니 별 실효가 없을 뿐이다. 이보다는 점포 수를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고, 급여를 내리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이게 여간 어렵지 않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노조가 선뜻 동의할 리 만무하다. 게다가 최근 관치금융 논란으로 금융지주 회장의 리더십이 큰 상처를 입었다. 조직도 사분오열돼 있다. 구조조정이 쉬울 턱이 없다.

 영업기반 확충도 쉽지 않다. 국내는 아예 불가능할 정도다. HSBC은행이 소매영업을 철수할 정도로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여기에 막대한 가계부채와 기업 부실로 예금과 대출, 모두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우리 은행의 국제화지수가 겨우 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0여 년째 국제화를 외치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기대 난망이다.

 자, 이제 결론이다. 은행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둘 중 하나다. 뻔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위기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흔들리고 있는 은행을 안정시킬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후자다. 다만 그걸 실행할 만한 역량이 있느냐다. 노조의 거센 저항과 정치권의 반발, 국민의 불만을 최소화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힘이 있느냐다. 그게 없다면 판도라의 뚜껑이 열리는 건 시간문제다. 관치금융 논란이 두고두고 안타까운 이유다.

김영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