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빛」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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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의 전천누들은 날로 그 어두운그늘을 넓혀 가고 있다.
공룡같은 철골들, 거만한「빌딩」들. 서울의 고층화는 의연하기보다는 오만무례한 인상이 더깊다.
그 임립한 상이로 후줄근한 시골아이들이 서울구경이랍시고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는 몰골들을 보게 된다. 우리의 마음은 어딘지도모르게 더욱 안스러운 느낌에 잠긴다.
그것은「건설」의 의미까지 회의하게만들때가있다. 「브라질」의 수도이전은 현대건책사에 남을 일이다. 신수도「브라질리아」는 마치 재단사가 새옷을 깁듯이 짜임새있고 규격에 맞게 건설되었다. 길은 편리할대로 곧고 건물들은 정원석을 놓듯 격조있게 배열됐다. 그것은 일종의「주문품도시」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도시에 살면서 한결같이 분방살이를 하는 듯한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계획가들은 뒤늦게 깨달은바가 있었다. 그것은 한낱 구도에 대한 향수도, 인정도 이니었다. 시민들은 「문화에의 향수병」에 젖게 된것이다. 전통과 생활습관과 문화감각에 어울리는 도시가 아니었다. 그래서 현대의 도시는 「인간부재」의 그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인간부재의도시」란 무슨 뜻인가. 건물만 요란하고, 인간은 그오만불손한 ?세에 턱없이 눌리는 도시를 말한다. 서울은 아니 우리의 건설과잉증은 바로 자신의 몸뚱이를 짓밟는 우를 범하고 있는것도 같다.
70년의 따뜻한 전통을 갖는 국민학교가 어느회사에 팔리는가하면, 서울대학교본부며, 문리대, 의대등 도심지의 「캠퍼스」들이 은행에 팔리고있다. 그것은 탁상의 산술로는 타산이 맞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의 알뜰한 교육유생들이 허무하게 변두리로 추방(?)되는 불쾌감과 허탈감을 벗을길이 없다.
학교뿐인가. 이른바 문화기관들의 「빌딩」은 죽은듯이납작하고, 상인들의「빌딩」은 하늘을 치솟고있는 현상은 씁쓸한미소를 짓게한다.
우리는 경쟁사회에서 누구의 독보를 나무랄수는없다. 그러나 우리의 양식과가치관은 선후를 분별할수있어야 할것이다.
구미의건축법중에서 유독「에인션트·라이트」 (Ancient I, ights=채광권)가 존중되는것은 깊이 존경받을일이다. 예부터 전해오는 빛을 「현대문명」의 이름으로 가릴수는 없다는 뜻이다.
검물만 남고, 인간도, 또 그의 높은 가치도 모두 소멸된다면, 과연 우리는 어느것을 선택해야 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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