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청계교여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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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69년 11월8일 청계국민학교가 끝내 문을 닫았다. 70년의 세월 속에 담긴 빛나는 전통도함께 파묻히고 말았다. 7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는 인간사처럼. 덧없이 모든 것이 끝난 이치처럼.
70성상을 활짝 열렸던 교문이 굳게 닫히던 날 종이 울리며 마지막수업이 끝날 때 8백90여어린이들이 선생의 품에 매달린 채 석별의 울음을 터뜨렸다.
무척 오랜 세월을 두고 좁은 운동장에서 마음을 터놓고 뛰어 놀지 못하고 도심의 소란 속에 한번 조용히 공부를 못한 한스러움이 선생의 가슴을 치는데 어린 마음은 그래도 원망보다 도타운 정이 있어 떠남을 슬퍼하고 있었다.
이 학교의 총면적은 1천5백69평. 운동장만 8백90평. 한 학생에 0.7평을 차지하는 꼴. 한사람이 5만원의 땅을 딛고 생활한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늘어나는 아동 수를 수용할 대지확장능력이 없어 학교를 비싼 값에 팔고 그 돈으로 변두리에 2, 3개 학교를 더 지을 수 있다는 당국의 「생산적인 계산」으로 결국 청계학교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청계학교는 1895년 8월 경성중부 오경선씨의 집에 을미의숙의 사숙으로 첫 출발(설립자 현채), 해방과 함께 서울 청계국민학교로 이름지어 이날까지 무려 60회를 거듭 1만4백4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명문교이다. 그러나 이 긴 세월 속에 면면히 자라온 전통, 그리고 빛나온 「청계」의 교명이 이제 다시 일컬을 수 없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선생의 품에 안겨 헤어짐이 안타까워 발버둥치던 청계의 어린이들은 이웃학교로 옮겨져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있다.
새로 찾아온 우리 청계어린이를 따뜻이 맞아주었다는 얘기가 남은 선생들의 마음을 다시치고 있다. 선생들은 텅빈 운동장과 교실을 서성이며 스며든 「청계의 얼」을 다시 맛보면서 영영 떠나버린 청계어린이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옮겨진 학교에서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 거듭하고 있을 뿐 다른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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