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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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다시 대학입시 예비고사 철이 돌아왔다. 최근에 마감된 추가 접수자까지를 합해 올해 응시자는 12만5백82명으로 집계됐다. 작년보다도 8천l백46명이 늘어난 셈이다. 고등학교를 나오고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예비시험에 낙제해서 대학진학을 단념하거나, 소위 「재수」라는 고역을 치러야 할 무수한 젊은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만이다.
그러나 대학을 가야만, 사람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고, 대학에 가더라도 꼭 화공과나 경영학과에 들어가야만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기만성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최근에 진화론자 「찰즈·다윈」의 전기가 미국서 나왔다. 「다윈」음 물론 대기중의 대기있다. 그러나 그것은 장성한 후의 「다윈」얘기고, 유년시절의 「다윈」은 극히 볼품없는 청년이었다. 「슈즈버리」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그 석차를 거꾸로 헤아리는 편이 빠를 정도였고, 모든 과학의 기초인 수학이 시원치 않았다. 그런 대로 「에딘버러」대학의 의학부에 입학했지만, 끝내 의학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 사람의 피를 보아 내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서는 지체 좋은 집안의 자제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가서 3, 4년 전속하인의 시중을 받으면서 자적하는 버릇이 있었다. 「다원」도 그런 관례에 따라, 「케임브리지」의 「크라이스츠·칼리지」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아예 신부가 되는 공부를 할 셈이었다. 그런데 「케임브리지」에서 신학공부를 하는둥 마는둥 하면서 「헨스로」라는 식물학 교수를 알게 되고, 마침내는 신부가 되겠다는 초지를 버리고 생물학자로 나서서 『종의 기원』이란 고전을 남긴 것이다.
「다윈」때와 요새와는 세상이 달라졌다. 요새 같으면, 「다윈」이 내각수사의 아들이었다 해도 「케임브리지」엔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에도 예비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은, 대학서의 명목상의 전공과학과 개인의 생애와는 별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학교 다닐 때의 성적과 출세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대기일수록 유년시가의 전망을 장성하면서 크게 뒤엎는다는 것이다. 시험을 치르면 붙어야 한다. 그러나, 낙제했다고 크게 낙담할 것은 없다. 단 「다윈」이 보여 준 진리는, 학교서 열등생도 좋지만, 무엇이고 한가지만은 심혈을 기울여서 파고드는 취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과 2주일을 남긴 시험을 앞두고 응시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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