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운의 이조여인」연산군 생모 4백74년만에 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조제9대왕 성종의 비였고 연산군의 친모였던「비운의 이조여인」폐비 윤씨가 4백74년만에 다시 고양서삼릉으로 옮겨졌다.
이조5백년동안 가장 불운했고 끝내 사사됐던 폐비 윤씨의 회묘(서울동대문구회기동·경희대구내)가 25일상오10시 고양군원당면원당리 서삼릉으로 이장되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원묘천장위원회(위원장이세정)에 의해 지난16일부터 파헤쳐지기 시작, 24일자정에 발굴이끝나 묘를 옮기게된 것이다.
폐비 윤씨의 묘가 이장되는 것은 관리가 번잡하고 소란스러워 유택으로는 적합치 못하다는 뜻으로 종친들에의해 옮겨진다지만, 다시 쫓겨나듯이 이장되는 것은 비참하고 억울했던 한 왕비의 한많은 일생을 되새기게 했다.
이조개국 1백5년되던 해 만든 이묘는 연산군이 복수를 겁냈음인지 다른 능과 달리 백회로「콘크리트」되고 석곽대신이중 목곽으로된 것이특징.
3m두께의 봉토와 다시 3m두께의 백회벽속에 안치됐던 관속에는 부장품이 한점도 없었고, 관위에 덮은 썩은 만장과 관밑에 괸 물, 그리고 물괸 함(길이14㎝, 폭 9㎝, 높이 9㎝)하나뿐이었다.
윤비의 묘는 처음 1495년 연산군이 즉위하자 곧 장단에서 13년만에 지금의 자리(당시양주중염지원)로 옮겨져 겨우 능으로 격이 높아졌으나 연산군이 폭정으로 폐위되자 다시 폐릉되었었다.
함안 윤씨인 비는 20세때(1476년)성종의 비로 책봉되었다가 그해 늦가을에 연산을 낳았으나 시어머니 조대비와 후궁들의 계략으로 폐비, 26세의 젊은나이로 사약을 받고 한많은 최후를 마쳤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