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납으로 성공신화' 의류업체 '베델' 한인 부부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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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업체로는 유일하게 국방부 납품을 해오고 있는 의류업체 베델인더스트리즈(이하 베델)의 김영길(66) 회장, 김선종(63) 대표 부부. 이들은 작은 봉제업체를 '하늘의 별따기'라는 군납 업체로 성장시켰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부부가 함께 나눔을 실천하고 있어 모범이 되고 있다.

베델은 육·해·공군에 이어 최근에는 해병대 전투복 공급권까지 획득했다. 5년 동안 180만 장(약 7000만 달러)의 전투복을 납품하는 대형 계약이다.

"납품업체 세미나 등에 가면 1000여 명 중 우리 부부만 아시안이고 거의 다수가 백인"이라는 김 회장은 이처럼 지속적인 국방부 납품 행진의 비결에 대해 "한 벌에 1달러의 제품이라도 명품 의류를 만드는 것과 같은 품질을 유지한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가 미국에 이민을 온 건 1976년. 단 1000달러만을 들고 뉴욕에 왔다는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맨해튼에 작은 가죽재킷 봉제공장을 차렸다. 김 회장은 "가죽을 자르다가 집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 테이블 위에서 매일 자다시피 했다"고 회상했다. 주말이면 중부 뉴저지주 잉글리쉬타운의 플리마켓에서 가죽상품들을 팔았다. 김 대표는 "전날 밤 차에 물건을 싣고 새벽 4시에 출발해야만 했다. 추운 겨울 온몸이 얼어붙었지만 힘든지 모르고 일했던 것 같다"고 웃었다.

회사를 맨해튼에서 뉴저지로 옮기면서 규모를 점점 키울 수 있었다. 랄프로랜과 존스뉴욕 등에 이어 명품 버버리에까지 납품하면서 승승장구를 하게 된다. 김 대표는 "존스뉴욕에 첫 납품을 하기 전 회사에 인스펙션을 요청했더니 존스뉴욕 측은 '인스펙션을 모두 피하려 하는데 먼저 요청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을 정도로 품질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이후 주문이 급감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김 회장은 "공장들이 모두 중국 등으로 옮겨가는데 '메이드 인 USA'를 유지할 수 있는 분야가 없을까 고심하다가 '정부 납품'을 떠올렸다. 그 중에 국방부라면 더 가능성이 많겠다고 생각했다"며 "이후 지인을 통해 앨라배마의 해군 제복 납품 업체 방문 등 공부하는 기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군 조달시장의 벽은 높기만 했다. 입찰에서 떨어지길 10차례. 2005년 기회가 왔다. 당시 육군의 전투복이 새로 바뀌며 납품 업체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샘플이 없기 때문에 어찌 보면 비슷한 조건에서 다른 업체들과 경쟁을 했던 것 같다. 이전에 최고급 업체에 납품하던 노하우와 정성을 보탰고, 우리의 노력을 인정한 연방의원들의 추천서 등도 더해졌다"고 말했다. 결국, 10전 11기만에 육군과의 계약을 따냈다. 5년에 200만 장(7500만 달러) 규모였다. 이어 2007년 공군과 2008년 해군까지 전투복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기술을 요하는 방탄복도 제작하고 있다.

베델은 2007년 매출 7000만 달러를 달성했고, 이듬해 조달청으로부터 최고협력업체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저지시티와 노스버겐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직원만 400명이다.

이들 부부는 봉사와 나눔에도 앞장서고 있다. 2005년 자신들의 영문 이름을 딴 CSK재단을 설립해 매년 20여 개 단체·기관 등에 약 10만 달러를 기부하고 있다. 이 중 저지시티와 유니온시티 등 공립교에 학교 당 1만~1만6000달러의 장학금을 매년 지급한다.

김 회장은 뿌리교육재단 이사, 한인동포회관 건축위원장 등을 역임해 왔다. 김 대표는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뉴욕지회장 등을 지냈다.

김 회장은 올 초 버겐카운티 프리홀더 의회로부터 올해의 한인상을 받았다. 김 대표는 여성 기업인으로서의 성공을 인정 받아 2005년 아시안여성경제인협회(AWIB) '리더십상', 지난해에는 '에브리싱 저지시티 페스티벌'에서 '레전드상'을 수상했다.

특히 최근 기적적으로 저지시티 시의원에 당선된 윤여태씨의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위원장도 맡았던 김 회장은 "앞으로 한인 정치력 신장과 청소년 정체성 확립에 도움될 수 있는 일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강이종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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