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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등청의 아침|새 구상을 들어 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최단시일 안에 현황을 파악해서 내달 초쯤 업무에 대한 소견을 밝히겠습니다』-
제5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은 김계원장군은 취임 첫날인데도 무척 침착한 표정이었다.
앞으로의 정보부 운영지침을 묻는 질문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일 뿐, 쉽사리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반공은 정보부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 전부가 하는 일이 아닙니까. 앞으로 국민과의 협조를 생각하겠습니다』(말을 멈추고)『정보부의 업무가 특수한 만큼 그 수행과정에서 국민들의 불만과 불평을 사는 일이 있겠지요…. 나는 군에서 정보일을 조금했지만 정보부와 일은 군사정보보다 광범하고 국가 안보에 직결되지 않습니까. 정보는 비공개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해도 받기 쉽지요. 도에 넘치는 활동으로 국민에게 억압감을 주는 일은 없도록 할까 합니다』고 그의 말은 시종 신중했다.
안보체제와 국방력에대해 그는『화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정신적 무장이 더 중요하다』는 지론이었으며 1·21사태가 국방태세의 강화를 10년쯤 단축시켰다던 그의 견해는 그런 점에서 수긍이 간다.
군에 있을 때 그의 통솔방침은 「사병」제일주의」전투력의 기본은 하사관이라고 강조하면서 주임상사제를 두어 하의상달과 사병의 후생문제에 힘쓴것은 유명한 얘기다. 이름없이 물러선 예비역 장성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기도 했다.
그의 새 직무에서도 이같은 성격은 그대로 비쳐 『바닥에서부터 알아 보고 백지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연전출신인 그는 「연세백인회」(동기동창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학계에 있는 배재동문이나 연대동문들과도 자주 어울려 군복아닌 평복의 사회에도 익숙했다.
박대통령과는 육군포병창설의 동료에 5·16혁명의 동지란 밀접한 사이. 가끔 양주를 대폿잔에 기울이면서 흉금을 터놓기도 했다. 육군참모총장 임기 만료 후 1년을 더 중임하고 미쳐 두 달도 안되어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한 것만 봐도 박대통령의 그에 대한 신임도를 짐작케 한다.
김부장이 요직등용의 전갈을 받은 것은 20일 강릉선 석포역에서였다. 군에 있을 때 못했던 부인 서봉선여사의 생일축하를 위해 설악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여객전무의 연락을 받고 철도전화를 받고 보니 급히 상경하라는 전갈이었다고 한다.
기용발표가 있기전 국방장관이 된다, 무슨 요직을 맡게 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으나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서 『알았다면 강릉엘 갔겠느냐』고 웃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4성장군은 음악애호가이기도 하다. 악기라면 못 만지는 것이 없는 아버지의 소질을 닮은 자녀(2남1녀)들과 어울려 사중주를 원효로 언덕길 그의 양옥 집에서 가끔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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