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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고 애 키울 수 있는 나라 ③ 유치원도 맘 편히 못 보낸다<하>원장 맘대로 올리는 원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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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학부모들이 아이를 사립유치원에 보내면서 1년간 내는 돈은 평균 543만원(지난해 기준). 국공립대 연간 평균 등록금보다 많다. 정부는 지난해 이후 유아교육비 지원(올해 월 22만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학부모 부담은 그만큼 줄지 않는다. 유치원들이 과도한 특별활동 참여 등의 방법으로 원비를 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손 놓고 있다. 이를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경기도에 사는 일곱 살 혜주(가명)는 올해부터 유치원에서 과학·미술·영어 등 특별활동(특성화활동)을 세 과목 듣고 있다. 지난해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 한 과목만 들었다. 과학·영어까지 듣게 된 건 유치원 방침 때문이다. 혜주 엄마 장모(36)씨는 “올 들어 유치원에서 모든 원생이 특활수업 3개를 의무적으로 신청해야 한다고 통보했다”며 “유치원에선 ‘방침이 바뀌었다’는 말만 할 뿐 상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유치원의 특활비는 과목당 10만원. 특활 두 과목을 더 듣게 되면서 혜주네는 매달 내는 유치원비가 50만원을 넘었다. 부담은 늘었지만 수업의 질은 오히려 떨어져 혜주는 좋아하던 미술마저 흥미를 잃게 됐다. 미술 수업은 지난해엔 10명이 들었으나 올해부턴 특활 참여가 늘어 30명이 함께 수업을 받게 되면서다. 장씨는 “유치원에 따지고 싶지만 아이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참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22만원 외 20만~50만원 더 내

 12개월치 유치원비에 입학금을 더한 연간 사립유치원비는 지난해 기준 543만7000원이다. 지난해 국공립대 평균 등록금(415만원)보다 비싸다. 유치원 정보공시 사이트인 ‘유치원 알리미(e-childschoolinfo.mest.go.kr)’에 유치원들이 올린 비용을 토대로 파악된 내용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육아정책연구소가 유치원생 744명의 학부모에게 조사한 결과 유치원비가 ‘부담이 된다’는 응답이 56.8%나 됐다(2012년 전국보육실태조사). 학부모들이 유치원에 바라는 개선사항은 비용이 단연 1위(29.4%)였다. 설비·실내환경(11.5%)·주변환경(9.8%)보다 월등히 많았다.

 정부는 가정의 유치원비 부담을 덜기 위해 지난해부터 유치원생에게 매달 수업료(올해 기준 월 22만원)를 지원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이 피부로 느끼는 부담은 이보단 적게 줄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5세 누리과정 이용 실태 및 요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립유치원 학부모들의 유치원비 체감 경감액은 월 10만원 정도였다. 정부 지원금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본지가 유치원 학부모 25명을 심층 인터뷰해보니 대부분 “정부 지원을 제외하고도 월 20만~50만원을 더 내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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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특활비 등 유치원비 인상 탓이다. 본지가 ‘유치원 알리미’를 통해 원비가 월 100만원 이상(입학금 포함)인 전국의 고액 사립유치원 70곳을 조사했더니 41곳이 올해 원비를 인상했고 이 중 18곳은 10% 이상 올렸다.

“특활비 가장 불만 … 가격도 천차만별”

 유치원비는 수업료 외에도 특활비·입학금·차량운행비·급식비·간식비·현장학습비·우유값·원복비·재료비 및 교재비 등 10여 항목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책정 기준을 학부모에게 공개하는 유치원은 거의 없다.

 유치원비 항목 중 학부모들이 가장 불만이 많은 건 특활비다. 10명 중 7명(69.8%)이 특활을 듣고, 3과목 이상 듣는 유아도 32.3%나 됐다(2012년 전국보육실태조사).

 학부모들은 유치원이 특활을 강요하고, 비용이 비싼 게 불만이다. 본지가 태교·육아일기 무료출판업체인 ‘맘스다이어리’와 유치원 학부모 26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28.9%가 “유치원비 중 특활비가 가장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내는 돈에 비해 가장 제값을 못한다”고 느끼는 항목 역시 1위가 특활비(25.1%)였다. 설문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체육활동이라고 해 봤자 놀이터에서 노는 게 대부분인데 따로 특활비를 받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스러워했다. 학부모 중 41.4%는 특활을 강요·권유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맘 하모(36·서울 송파구)씨는 “유치원 입학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다른 엄마들은 다 신청한다’는 유치원 교사 말에 어쩔 수 없이 특활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특활을 안 하는 유아는 유치원에서 외톨이가 된다. 직장맘 박모(38·서울 성동구)씨는 “특활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아이들 다 듣는데 혼자서 안 들으면 그 시간에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특활은 유치원별로 프로그램이 비슷한 데도 비용은 제각각이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영어 특성화프로그램 운영 현황’을 보면 영어 특활 비용은 9000원에서 24만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뮤지컬 영어 과목을 개설한 25개 유치원은 30~40분짜리 1회 수업 비용이 1만1000~4만원이었다. 급식비와 입학금 역시 불투명한 항목 중 하나다. 일곱 살 딸을 키우는 주부 우모(38·울산)씨는 “유치원 식단표엔 분명히 밥과 국·반찬 세 가지가 나온다고 돼 있는데 정작 아이가 ‘단무지 반찬만 나왔다’고 불평할 때가 종종 있다”며 “매달 3만원씩 6개월치 급식비를 한번에 내는데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추가적인 개인 부담도 적잖다. 일곱 살 아들을 키우는 주부 송모(36·경남 창원)씨는 “유치원에 매달 재료비를 내는데도 아이가 쓰는 화장지·물티슈부터 딱풀·치약·비누까지 엄마가 따로 준비해야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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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성시윤·이한길 기자, 민경진 인턴기자(부산대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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