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백지동맹 사건' 주도 103세 최순덕 여사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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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제강점기 때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최순덕(사진) 여사가 별세했다. 103세.

 1911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29년 전남여고의 전신인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벌인 ‘백지동맹 사건’을 이끌었다. 백지동맹은 항일시위를 벌인 학생들이 구속된 데 항의해 전교생이 시험을 거부한 사건이다. 학생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된 계기가 됐다.

 고인은 그해 11월 3일 광주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일시위 당시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랐다. 그러다 함께 시위를 벌였던 학생들이 대거 구속되자 기말고사를 하루 앞둔 11월 9일 호소문을 통해 시험거부 투쟁을 주도했다. 그가 밤새워 작성한 호소문에는 ‘구속 학생 석방과 조선 독립을 위해 한 글자도 쓰지 말고, 운동장으로 모이자’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백지동맹의 주모자로 지목된 고인은 사건 직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가 이듬해 1월에 퇴학처리 됐다. 퇴학 24년 만인 1954년에야 공로를 인정받아 전남여고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지만 독립유공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당시 동맹에 참여한 딸이 구속되는 것을 막으려던 친구의 아버지가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최 여사의 행적까지 묻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다. 고인의 가족들은 수차례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으나 다른 사람이 주동자로 돼있어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족은 아들 이재웅(전 전남 완도경찰서장)·재균(이재균치과 원장)·재민(순천향대 교수)씨 등 6남 1녀. 빈소는 광주광역시 광주한국병원 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9시30분. 062-380-3041.

광주=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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