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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 늘면서 남편 폭행 급증 … 보복 우려 경찰서에 신고 꺼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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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A씨는 얼마 전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을 참다못해 아산다문화가정센터를 찾았다. 그는 상담과정에서 불안함에 가득 찬 얼굴로 “7년의 결혼생활 동안 30살 연상인 한국인 남편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술을 마시면 이어지는 남편의 이유 없는 구타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성적 노리개로 팔려왔다는 비참함에 자살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아산다문화가정센터는 이런 폭력 사태를 인지하고 A씨의 남편을 불러 상담했다. 하지만 A씨의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 뉘우침도 없이 또 다시 A씨를 폭행했다. 결국 이주여성센터에서는 아산경찰서에 도움을 청했고 A씨의 남편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상습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남편 이모(63)씨는 “너와 결혼하면서 재수가 없어 교통사고가 났다”며 “싸 돌아다니지 말라”고 자동차 열쇠를 빼앗는 등 엉뚱한 이유를 들어 A씨를 폭행했다.

# 2010년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인 B씨는 술만 먹으면 자신을 때리는 남편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평소에는 인자하던 B씨의 남편은 술에 취하면 인사불성이 됐다. 특히 지난달에는 회칼을 휘두르며 “다 죽여버리겠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한국에서 행복해야 할 결혼생활이 자칫 생명까지 위협받는 처지에 놓여졌던 것이다. B씨는 가족상담센터에 도움을 청했고 남편에게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게 할 수 있었다. 3년간 폭행에 시달렸지만 B씨는 남편의 처벌을 원치 않았다.

현재는 알코올중독 치료를 마친 남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다시 꾸리고 있다고 한다. B씨는 “남편의 안 좋은 습관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후회스럽다”며 “앞으로 아산경찰서나 시민단체에서 이주여성을 보호하는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산지역 이주여성 피해사례 큰 폭 증가

최근 아산지역에 국제결혼이 증가하면서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피해도 덩달아 늘고 있다. 이에 개선책 마련이 절실한 실정이다.

특히 이주여성들의 가정폭력은 지구대나 파출소에 신고는 되지만 사건화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피해 이주여성들이 남편의 처벌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관계 기관의 상담으로 중재되는 경우가 많다. 피해 상담건수가 급속도로 증가하긴 하지만 수면 위로는 떠오르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112·다문화가정센터에 접수된 상담건수는 올해 29건으로 지난해 12건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현재 아산 관내 결혼 이주여성은 올해 6월 기준으로 34개국 1857명(한국계 러시아인, 한국계 중국인 포함)에 달한다. 국적 취득 여성이 998명, 미취득 여성은 859명이다.

 아산 경찰서 관계자는 “이주여성들의 가정폭력 피해사례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경찰서에 연락을 취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며 “경찰서에서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잘못된 생각과 남편이 처벌을 받아도 금방 풀려나 더 큰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산 경찰서의 경우 외사계에 외국인이 외국인을 상담해주며 그들을 도와주는 ‘마미폴’제도가 활성화 돼 있고 외사계에서도 이주여성들을 보호하는 여러 사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를 받는 여성이면 적극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삼진아웃제’ 도입 등 맞춤형 보호프로그램 시행

피해사례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검찰에서도 이주여성 가정폭력범에 대해 ‘삼진 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집안 사정’ 이라는 이유로 적극 개입하지 않던 가정폭력범죄에 대해 검찰이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검찰은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대책으로 ▶가정폭력 사건 ‘삼진 아웃제’ 도입 ▶합의 사건도 원칙적으로 교육·상담 조건부 기소유예 또는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토록 의무화 ▶심리상담, 긴급호출기 제공, 결혼이민자 통역·법률지원 등 피해자 보호조치 강화 등을 중점 시행할 방침이다.

 이주여성 긴급지원센터에 접수된 경찰가정폭력 상담 신청(전국기준) 건수를 보면 2011년 5744건에서 지난해 8417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아산경찰서 역시 이주여성을 ‘사회적 신생아’로 표현하며 그들을 위한 맞춤형 보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2009년 전국 최초로 10개국 24명의 결혼이주여성으로 ‘외국인 치안봉사단’을 결성한 아산경찰서는 충남지방경찰청으로부터 우수 시범운영관서로 지정됐다. 현재는 외국인 치안봉사단을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할지를 점검하고 있다.

아산서에는 2600여 명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위험도를 삼색 신호등에 착안해 Red(위험), Yellow(관심), Green(안전)으로 분류하고, 이중 고위험 가정은 자국민인 외국인 치안봉사단원과 경찰관이 1대 1로 집중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정폭력의 예방과 피해 여성의 심리 치료, 생활 안정 지원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도 구성했다.

 아산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에 대한 신뢰 회복이 가정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중요한 치안 인프라라는 확신을 실행에 옮기면서, 경찰의 진정성이 조금 더 빠른 속도로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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