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불법파업 대응 개선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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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회사측이 파업으로 손해를 봤다며 노조와 노조원을 상대로 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 신청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가압류 등의 남용은 근로자의 살림 파탄 및 노조 탄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아직까지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지만 가압류 요건을 상당 폭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특히 새 정부가 노사관계에도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를 적용하겠다고 천명한 만큼 선진국의 사례를 많이 참고할 전망이다. 노동부 최병훈 노사정책국장은 "무조건 손배소와 가압류를 막기는 사실상 어렵다"면서 "기업의 권리는 보장하면서 노조가 완전히 무력화되는 것은 막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바뀔까=정부는 우선 노조원 개인에 대해서는 폭력 등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 한 단순가담자로 분류해 손배소와 가압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단순가담자는 노조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한 만큼 이들에게까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다만 개인이라도 노조 간부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노조가 불법파업을 결행할 때는 노조 간부가 회의 등을 통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노조에 책임을 묻는 현 제도는 고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지금처럼 노조원이 내는 조합비 등을 가압류하는 것은 정당한 기업의 권리로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합활동은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노동부는 보고 있다. 손해에 대한 책임을 묻더라도 지금처럼 조합비 전액을 가압류하지 말고 50% 정도를 가압류토록 하는 등 상한선을 두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가압류를 할 때 법원에서 변론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노조 측이 충분히 변론할 수 있도록 하고, 판사가 이를 검토해 가압류의 범위 등을 결정토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선 민법을 고쳐야 한다. 만약 이들 구상이 구체화할 경우 다른 민사사건과 달리 노조활동과 관련된 가압류에 대해서만 예외를 두는 셈이다. 당장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재계와 법조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조영선 변호사는 "법 논리상 가압류를 금지하는 것은 힘들다"며 "다만 조합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 산하 노동법제연구실 이승길 책임연구원은 "기업이 노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손배소와 가압류를 제한하는 것은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은 어떤가=선진국들도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개인에 대해서는 불법파업이었다 하더라도 별도의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 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조에 책임을 물을 때도 한국처럼 노조비 전액을 가압류하지 않고 상한선을 둔다.

영국은 1982년 고용법을 제정, 불법파업을 벌였을 경우 노조에 책임을 철저하게 묻고 있다. 현행 영국 고용법에는 불법파업으로 인한 책임을 조합에 지우는 한편 위법한 수단을 사용한 노조간부 등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고 있다. 다만 노조기금을 가압류할 경우 일정 규모 이상 할 수 없도록 했다.

독일도 불법파업으로 인한 사측의 손해에 대해 노조단체와 조합 임원에게 연대책임을 지운다. 특히 노조를 법인으로 등기토록 하고 있다. 노조를 민법상 법인으로 대우함으로써 손해배상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 참가자의 경우는 기물파괴나 폭력 등 불법행위가 없는 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김기찬.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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