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때 원전 내부 '폴라 크레인' 위험성 논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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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원전 비리 사건이 이어지면서 부품 구매뿐 아니라 시설·공사 분야까지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 크레인 설계 전문가가 국내 원전에 모두 쓰이는 ‘폴라 크레인’이란 장비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강진이 닥칠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서 출발한 구식 설계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고도 비판했다. 이에 대해 폴라 크레인 제작사인 두산중공업과 제품을 검사하는 입장인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장기간에 걸쳐 안전성이 보증된 기술만 써야 하는 원전 분야의 특수성도 강조했다. 양측은 20일 중앙SUNDAY를 찾아와 기술적 쟁점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양측의 주장과 반론을 인터뷰 형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원전 천장에 설치된 폴라 크레인(위). 폴라 크레인 밑으로 원자로가 설치되는 모습.

미국식 구식 설계 고집해 와이어로프 구성 등 잘못
대형 크레인 설계자 박인 이사

박인(72·사진)씨는 대형 크레인을 설계해 온 전문가로 현재 모 업체 기술이사를 맡고 있다. 현재 국내 원자로에 두루 쓰이는 폴라 크레인의 설계에 문제가 많다는 게 박 이사의 주장이다.

 -어떤 문제들이 있나.
 “강력한 지진이 올 경우 구조적으로 완벽한 대비가 안 된다. 또 물건을 실어 나를 와이어 로프가 두 줄이 아닌 한 줄로만 돼 있어 취약하다. 허용 중량을 국제 규격이 아닌 미국 도량형(US톤)을 쓴다. 전반적으로 옛날 설계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해외에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나라로서 창피한 수준이다.”

 -내진 설계에 어떻게 취약한가.
 “지진이 발생하면 지상에서 수십m 높이에 있는 폴라 크레인에 충격이 간다. 그때 진동을 줄이기 위한 내진 앵커가 있는데 그 위치가 잘못됐다. 이 때문에 심한 수직·수평 진동이 오면 크레인이 아래위로 흔들리며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어느 정도의 지진이면 문제가 되나.
 “내진 설계 전문가가 아니므로 지진의 규모를 얘기할 입장은 아니다. 폴라 크레인 밑에 뭐가 있나? 바로 원자로다. 원전처럼 안전이 중요한 곳에서 구조적인 취약성이 있는 장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다.”

 -와이어가 한 줄이면 안 되나.
 “소형 크레인은 한 줄을 쓰기도 하지만 일정 규모(대략 하중 30t) 이상이면 두 개의 독립된 줄을 쓰고 양쪽 줄의 균형을 잡아줄 장치(밸런싱 시소)를 쓰는 게 상식이다. 한쪽이 끊어져도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폴라 크레인쯤 되는 규모라면 당연히 두 개의 줄을 써야 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

 -US톤 등 미국 도량형을 썼다는데.
 “1US톤은 907㎏이다. 이건 영미식 도량형에서 무게 단위로 쓰는 파운드를 톤 단위와 비슷하게 만들다 나온 거다. 1US톤은 2000파운드다. 그런데 미국 외 거의 모든 나라가 쓰는 국제 표준 도량형의 1t은 알다시피 1000㎏ 아닌가. 약 10%의 오차가 있다. 운용자가 하중 계산에서 착각을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일본도 우리처럼 미국식 원전 기술을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도량형을 모두 표준 방식으로 바꿨다. 우리는 그대로다.”

 -그 밖에 구식 설계를 고집한다는 근거는.
 “원전용 폴라 크레인은 안전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전기 모터로 줄을 감다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줄이 감기는 장치(드럼)를 세우도록 돼 있다. 이상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구동 모터의 회전 수를 감지하는 센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국내 폴라 크레인에는 간편한 전자식 센서가 아닌 오래된 기계식 장치를 쓰고 있다.”

 -새 설계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관련 기술이 넘어 온 1960년대 말 또는 70년대 초의 미국 것을 그대로 받아서 쓰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요즘 기술로 새롭게 설계를 한다면 어디서도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 기술 표준에 맞춰 규모7 강진에도 끄떡없어
송인창 두산중공업 기계설계팀 부장

원전용 폴라 크레인 설계·제작사인 두산중공업과 장비 발주사인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박인 기술이사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국내 원전에 설치된 폴라 크레인을 다수 설계해온 송인창(사진) 두산중공업 부장이 박 이사에 맞서 반론을 주도했다.

 -내진 앵커의 구조적 취약성이 있나.
 “박 이사가 주장하는 내진 앵커는 우리 용어로는 ‘브리지 락킹 디바이스(bridge locking device)’라는 설비다. 우리 설계는 지진이 날 경우 이 설비가 진동을 더 강화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일정 이상의 하중을 받으면 접합부가 깨지도록 돼 있다. 크레인이 아예 멈춰 고정된다. 출렁이다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충분한 내진 설계를 한 건가.
 “리히터 규모 7 이상의 강진에도 충분히 견디도록 모든 부품과 구조물이 설계된다. 이런 작업은 우리가 임의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검증된 기술 표준에 맞춰 진행된다.”

 -예상을 넘는 강진이 온다면.
 “처음부터 이중·삼중의 고려를 한다. 예컨대 일본과 한국에서는 크레인을 고속·중속·저속형 3단계로 구분하지만 우리가 따르는 미국 기준은 5단계다. 폴라 크레인은 하는 일만 따지면 가장 간단한 클래스 A급의 일을 하지만 안전도를 고려해 두 단계 높은 클래스 C급으로 설계한다.”

 -와이어는 두 줄인 게 더 안전해 보이는데.
 “박 이사 측이 발전된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증거다. 두 줄로 만든 뒤 하나가 끊어져도 좋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 원전에선 한 줄이건 두 줄이건 절대 끊어져선 안 된다. 우리는 국제적인 크레인 안전운용 체계(COSAS·Crane Operation Safety Association System)에 맞춰 설계한다. 처음부터 안 끊어지도록 설계하는 개념이다.”

 -왜 국제 규격과 다른 도량형을 쓰는가.
 “중요한 것은 그랬을 때 착오에 의한 안전 사고가 생기느냐인데 가능성이 없다. 폴라크레인은 격납 건물(원자로 돔) 내에서만 쓴다. 들어올리는 화물이 정해져 있어 착오가 발생할 수 없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겨도 US톤과 메트릭 톤의 오차는 10%지만, 크레인은 표시 하중 용량보다 25% 이상을 들어도 문제가 없다. 물론 왜 굳이 US톤을 쓰느냐고 물을 수는 있다. 답은 발주처에서 그렇게 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국 설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는 건 맞을 거다. 그러나 현재는 국제 규격도 병기하고 있다”

 -옛날식 설계가 남아있는 이유는 뭔가.
 “전자식 센서를 안 쓰고 왜 수십 년 된 기계식 장치를 쓰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같다. 오직 안전 때문이다. 전자식 장비는 싸고 간단하지만 노이즈(Noise·전자 장비에 발생하는 이상 신호, 잡음)에 대한 검증이 충분치 않다. 더 비싸고 복잡해도 검증된 기계식 장비를 쓰는 이유다. 원전 주요 장비의 설계는 충분히 검증된 기준을 따른다. 새 기술이라고, 값이 싸다고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다.”

강찬호·이승녕·류정화 기자
정리·도움=이상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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