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공의 접근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면적 대규모 충돌로 줄달음질 치는 듯이 보이던 소-중공 관계가 9월11일 북평에서 열린 「코시긴」 소수상과 중공수상 주은내의 회담을 고비로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같다. 이를테면 「닉슨」대통령이 미국과 교전중인 공산월맹을 갑자기 방문할 경우 못지 않게 놀라운 사태진전이라고 관측되기까지 한 이 「코시긴」·주 회담은 긴장을 다소나마 완화하는 움직이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대 공산국을 60년 초부터 갈라놓아온 3대 쟁점, 즉 「이데올로기」분쟁, 영토권주장 및 공산주의 운동의 주도권 쟁탈저이 쉬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결코 상상키 어렵지 않다.
회해의 조짐을 보이고 있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면 67년 이래로 중단상태에 있던 통상 회담이 「모스크바」에서 열리고, 양국군이 지난 3월초부터 빈번하게 일어난 국경선 충돌지구에서 철수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련은 자신의 「이니시어티브」에 의해 「코시긴」·주회담 후 중공에 대한 비난을 일시 유예하고, 10월1일의 중공 「건국」 20주년에는 예년에 비해 뜨거운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등 화평 공세를 취했을 뿐 아니라, 중공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대미입장 경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소련은 8월15일 전까지 미·소 핵무기제한 회담을 열자는 「닉슨」제의에 대해 일시·장소에 대한 회담을 피해왔고 「그로미코」외상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월남 문제를 놓고 강경임장을 취하는가 하면, 중동분쟁에 대해서도 비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소·중공 간의 해빙 「어프로치」는 어디까지나 서로의 내외사정의 필요에서 자신에게 이로운 범위 내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중공만 하더라도 57년에 시작하여 실패로 끝난 대약진 운동과 66년부터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는 「문화대혁명」으로 경제적으로는 파탄과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고, 군사적으로는 제법 급진전을 보이고 있는 핵무기 개발에도 불구하고 취약성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분열과 혼란 쏙에 빠져있다. 또 중앙집권체제의 권위가 극도로 약화돼 있고, 외교적으로는 극소수 국가를 제외하고서는 세계에서 거의 수립, 유리돼있다.
국경선의 긴장을 덜기 위한 병력 철수는 소 군사력의 압도적 우세와 핵시설의 선제공격이라는 현실적 가능성을 인식한데서 온 후퇴라고 볼 수 있으며, 통상회담의 재개는 대소통상증진으로 실리를 얻자는데서 나온 계산에 의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62∼63년에 모든 수출액의 50%가까이 되던 중공의 대소무역이 68년에는 불과 2.5%를 차지한데 머물러 옛시장의 재 개척이 필요하리라는 것은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 소련의 대중공「어프로치」는 국부적인 국가관계에 머무르는 것으로 당 관계에서는 전혀 해빙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다.
즉 중공성립20주년에 보낸 소련 측 「메시지」는 소 최고회의 간부회의와, 각료회의로부터 중공의 국가주석, 전국 인민대표자대회, 국무원 앞으로 보내진 것으로 당 중앙위나, 간부회명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작금의 움직임이 3대 쟁점의 해결에 급속한 실마리를 가져와 소·중공 관계가 분쟁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양대 공산국 간의 접근은 경계해야 할 것이며, 특히 소·중공 관계에서 엄정 중립을 지켜오던 북괴가 북평 정권에 접근을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포드고르니」의 북괴 방문에도 불구하고, 지난6월의 세계 공산당 대회에 불참했던 북괴가 소·중공의 접근「무드」가 보이자, 다시 북평에 추파를 던지는 것 같다. 북괴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용건을 단장으로 하는 북괴 당·내각 대표단이 북평을 방문, 주은내·섭검영·사부치·구회작·곽말야 등 중공 고위층과 수천 군중의 출영을, 받았다는 것은 특히 우리의 경계를 요하는 사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