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급 규모 550점 '전씨 컬렉션' 값어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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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술품이 다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처로 의심하면서다. 검찰이 전 전 대통령 내외와 자녀, 친인척 등에 대한 사흘간(16~18일)의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미술품만 총 550여 점이 넘는다.

 회화·조소 등 현대작품뿐 아니라 도자기나 병풍·불상·자수 등 고미술품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전담팀 안팎에서는 “작은 전시관을 하나 차릴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사저에서 압류한 대표 물품으로 귀금속이나 세간살이 대신 고(故) 이대원 화백의 시가 1억원 상당의 그림을 꼽았다. 추징금 환수를 위한 첫 단추가 비자금을 이용한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아트 재테크’를 어느 정도 입증할 수 있느냐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압수물 면면을 살펴보면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아트 재테크’는 주로 골동품을 포함한 고미술품에 집중돼 있다. 회화도 국내 유명 원로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최근 CJ그룹 수사 등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재벌가에선 주로 해외 유명 작가 작품을 수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술품은 주로 장남 재국씨가 실제 거주하는 건물 2층 수장고와 경기도 파주 시공사 기숙사, 연천군 허브빌리지 창고에서 수십~수백 점씩 발견됐다. 실제 재국씨는 미술계에서 상당한 수준과 규모로 작품들을 모아 온 ‘파워 컬렉터’로 알려져 있다. 그가 1990년 설립한 출판사 시공사는 국내 30~40대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다룬 ‘아르 비방’ 시리즈 55권을 완간하기도 했다. 검찰은 550여 점의 값을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관장소나 방식에 비춰 최소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담팀은 추징을 마칠 때까지 고미술품과 골동품류는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 회화 등 현대미술 작품은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맡기기로 했다. 두 기관에 감정 전문가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압수물 하나하나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다. 또 매입자금 출처를 입증하는 것이 검찰의 최우선과제다.

 미술품은 자산 운용과 문화적 욕구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자산가들의 수집 대상 1호다. 가격 파악이 쉽지 않고, 유통 경로를 숨길 수 있어 탈세·불법상속이 쉽기 때문이다. 또 좋은 그림은 상당히 매력적인 ‘재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미술품을 통한 재산은닉이 처음 화제가 된 것은 93년 김종필 전 민자당 총재가 “신군부에 대원군의 난 병풍 등을 강탈당했다”고 주장하면서다. 99년에는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그림로비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63빌딩 지하 수장고를 압수수색해 203점의 그림을 확인하기도 했다.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도 140억원대의 고가 미술품을 통해 자금세탁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 관계자는 “믿을 만한 작품은 가격이 금세 수십~수백 배씩 오르는 데다 국세청의 눈도 피할 수 있어 미술품이 재산은닉 수단으로 자주 이용된다”고 말했다.

정재숙·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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