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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6200억 비자금' 그룹 차원서 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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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기업 전체가 총수 재산을 불리기 위해 움직였다.”

 CJ그룹 비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한 박정식(52)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18일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재현(53·사진) CJ 회장 지시로 CJ그룹 재무팀과 해외법인 임직원들이 동원돼 국내외에서 10여 년에 걸쳐 비자금을 불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 그룹 재무팀에 직접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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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차장검사는 “분식회계·주가조작 등 수법으로 회사 돈을 빼돌려 기소된 과거 대기업 총수와 다르다”며 “역외 조세피난처를 거점으로 국내외 주식투자를 통해 비자금을 불리고 조세를 포탈하는 수법이 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대진)는 이날 이 회장을 6200억원의 국내외 비자금을 차명으로 운용·관리하며 ▶조세 546억원 포탈(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회사 돈 963억원 횡령(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해외법인에 569억원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로 구속 기소했다. 범죄를 도운 성모(47) 재무팀 부사장 등 3명도 공범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달 27일 구속 기소한 신모(57) CJ홍콩법인장(부사장)은 조세포탈 혐의를 추가했다. 박 차장검사는 “실무자를 제외하고 범죄에 가담한 임원급 이상 직원을 모두 기소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이 회장의 비자금 규모는 총 6200억원. 이 회장은 2000년 이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차명주식과 주식·미술품 거래로 번 돈 등으로 종잣돈을 마련했다. 이후 2003~2007년 CJ 임직원 459명 명의로 만든 차명계좌 636개로 CJ 주식을 사고팔아 차익을 남겼다. 직원들에게 회의비·복리후생비 등을 지급한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해 회사 돈을 빼돌리기도 했다. 미술품을 싼 값에 사들여 비싸게 파는 수법도 동원됐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만 3600억원 규모로 비자금을 불렸다.

해외선 페이퍼컴퍼니 통해 돈 관리

해외 비자금 2600억원을 조성하는 데는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적극 활용했다.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CJ해외법인 임직원 명의로 만든 7개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CJ㈜ 등 계열사 주식을 사고팔아 차익을 남겼다. 박 차장검사는 “베네피셜 오너(beneficial owner·실소유자)를 이 회장으로 하고 계좌를 관리하고 인출하는 권한은 해외 현지 직원들로 돌려놓는 수법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근무하지도 않은 해외 직원의 급여를 지급한 것처럼 회계를 조작하거나 일본 법인을 통해 도쿄에 개인 빌딩을 사들이는 방법도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세금도 포탈했다.

 이 회장의 비자금 중 상당수는 현금·주식·채권이나 미술품 등 형태로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0일 가까운 공개수사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밝혀내지 못한 부분도 있다. 검찰이 상당히 의욕적으로 수사했던 주가조작 혐의와 해외자금도피 혐의는 기소 단계에서 빠졌다. 홍콩·싱가포르 등 금융감독기관에 요청한 해외자금 거래내역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답변이 오면 추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1998~2002년 조성한 해외 비자금에 대해선 “조세포탈 혐의 공소시효(10년)가 지났다”며 기소하지 않았다.

주가조작·해외자금도피는 못 밝혀

 박 차장검사는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을 통한 구명로비나 방송법 개정 관련 로비 의혹에 대해 “구체적 단서가 나오면 수사할 수 있지만 그럴 만한 단서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비자금 사용처는 상당 부분 확인했지만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CJ그룹은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검찰 수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향후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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