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105> 나는 청렴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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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하지만 윗물이 맑다고 해서 아랫물이 반드시 맑은 것은 아니다. 윗물이 맑은 것은 아랫물이 맑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공직자들에게 ‘청렴하라’고 사명감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율기’에서 ‘지자이렴(智者利廉)’을 찾아냈다. ‘지혜로운 자는 청렴함을 이롭게 여긴다’는 뜻이다.

 나는 오랜 공직생활 동안 지자이렴을 수칙으로 삼아왔다. 다산은 ‘재물보다 왜 청렴함이 이롭다고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고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난 공직생활을 하며 청렴했다기보다 이렴(利廉)했다. 서울시 공직자에게도 지자이렴을 강조했다. 그리고 신상필벌(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줌)의 원칙에 따라 인사를 했다. 부패한 공직자는 백벌백계(百罰百戒)했다. 일벌백계(一罰百戒·1명을 벌줘서 100명이 경계로 삼도록 함)가 아니다.

2001년 5월 8일 고건 서울시장(왼쪽)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민원 처리 온라인 공개 시스템(오픈 시스템)’을 전 세계로 보급하는 내용의 공동 사업을 추진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사진 고건 전 총리]

 과거엔 일벌백계가 관행이었다. 처벌받은 사람은 ‘아, 나만 운이 나빠서 걸렸다’는 인식을 갖는다. 처벌을 해도 큰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100명이면 100명 모두 처벌한다는 백벌백계의 원칙을 공직사회에 정착시키려 노력했다. 부정을 저지르면 시기가 이를 수도, 늦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적발된다.

나는 민선 서울시장 때 부패를 적발하는 방법의 하나로 ‘시장이 직접 받는 부조리 신고 엽서 제도’를 활용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무관용주의(Zero Tolerance)는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도 권고하고 있는 원칙이다. TI는 매년 세계 각국의 청렴도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내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인 1999년부터 서울시 역시 기관·행정 분야별로 반부패지수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이권 관련 민원을 제기하고 처리 과정을 경험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반부패지수를 산출했다. 지수가 안 좋게 나온 몇몇 구청에서 반대했지만 밀고 나갔다. 자정 노력을 펼치도록 반강제적으로라도 경쟁을 붙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청렴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인사도 부정부패를 막는 데 중요한 요소다. 물이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 한 공무원이 오랜 기간 같은 지역에서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그 공무원은 그 지역의 민원인이나 업자들과 유착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런 부조리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데 역점을 뒀다.

1998년 말 나는 건축·위생·세무 등 5대 부조리 취약 분야에 근무하는 25개 구청 공무원 중 4142명을 대상으로 구청 간 교류 인사를 냈다. 구청 직원 80%의 보직이 바뀌는 시정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대 규모의 인사였다. 인사를 통해 부패 커넥션을 차단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엔 망국적인 부패가 만연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중심엔 파워 엘리트들의 부패 커넥션이 자리 잡고 있다. 로펌과 장관직, 금융감독기관과 민간 금융사, 전관예우 등의 부패 커넥션부터 차단해야 한다. 단호한 의지와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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