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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 부르는 「동상이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말레이지아」연방에는 세가지「얼굴」이 있다. 「말라야」의 얼굴, 중국의 얼굴, 그리고 인도계의 얼굴이다. 1천만 인구중 53%가 「말라야」인이고, 37%가 중국인, 그리고 나머지10%가 인도인이다. 이 세인종이 공존하며 동남아에서는 연간개인소득 3백「달러」란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이 나라도 결국 『피의동화』란 엄청난 시련앞에는 두손을 든 셈이다. 「5·13」의 피의 폭풍이 횝쓴지 3개월이 넘었는데도 긴장감은 조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공항으로부터 수도 「쿠알라룸푸르」로 들어가는 기자가 탄 차도 매서운 눈초리의 경관으로부터 검문을 받았으며 시내에서도 요소에는 순찰하는 많은 경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상오 1시부터 4시까지는 통금이다. 이렇게 삼엄한 무장하의 「말레이지아」연방은 「5·13」인종폭동이 빚어낸 사태를 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한 것 같다.
동남아 신생국가들이 겪고있는 가장 심한 두통거리가 화교문제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레이지아」연방에서도 그동안 곪아온 이 문제가 5월총선을 계기로 폭발했을 뿐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동남아에 산재해 있는 화교는 1천2백만명이다.
이것을 지역별로 보면「말레이지아」에 3백50만, 「인도네시아」에 3백만, 태국에 2백50만, 「싱가포르」에 1백50만, 월남에 1백만, 그리고 「캄보디아」 「버마」 「필리핀」이 각각 50만으로 되어있다. 이것을 볼때 다른나라에서는 다수 내지 동수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므로 「말레이지아」에서의 「말라야」인대 중국인의 대결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임을 알수 있다.
1957년에 독립할 때부터 경제력은 중국인 손에, 그리고 정치권력은 「말라야」인의 손에 장악돼왔다.

<독립전 민족간 약정 깨져>
독립직전에 통일「말라야」국민조직(UMNO)과 「말라야」중국인협회(MCA)대표는 두 민족이 손을 잡고 건국하자는 다음과 같은 약정을 맺었었다.
『건국후에 중국인은 시민권을 갖고 자유롭게 돈을 벌수 있다. 그러나 신국가는 「말라야」인의 나라임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국교는 회교, 공용어는 「말라야」어, 그리고 정부내에서는 「말라야」인이 우위를 점한다. 「말라야」인은 중국인보다 훨씬 뒤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수준향상을 위해 특별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때에 중국인대표들은 그저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 약정을 받아들였으며 나중에 「말라야」인도인협의회도 이에 참가, 마침내 3파가 규합된 연방당이 집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약정이 10여년을 경과함에 따라 모순이 드러났다.
경제는 점점더 중국인 손으로, 그리고 정치권력은 일방적으로 「말라야」인의 수중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런 모순과 불만이 5·10총선거에 그대로 반영되어 연방당이 과반수는 유지했지만 도시에서는 참패했다.
이 선거결과를 보고 「말라야」인들은 국민의 정치적 균형이 바꾸어지고 있다는 공포감, 그리고 차제에 중국인에게 본때를 보이자는 생각등이 폭발하여 중국인사회에 대해 조직적인 공격을 가했다.

<라만 수상권력 한때 후퇴>
여기에 대한 중국인의 반격이 있어 5백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폭동으로 번졌다.
이 폭동의 결과로 인종통합론자인 「라만」수상의 권력이 쇠퇴해지고 반면「말라야」인 「엘리트」들이 미는 「라자크」부수상이 전면으로 나와 「국가작전평의회」의장에 취임했다.
이렇게 5·13 폭동후부터 이때까지는 권력을 「말라야」민족주의자들의 강경파가 좌우했지만 요즈음에 와서는 다시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혼할수 없는 불화부부>
이때까지 뒤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라만」수상이 다시 전면에 나서서 수습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국각지를 순회하면서 중국인들을 모두 바다에 처넣을수도 없으니 손을 잡고 함께 살아야한 다고 호소하고 있다. 갈홍기 한국대사도 이 나라의 「말라야」인과 중국인을 부부에 비유하면서 『이혼하고 싶어도 이혼할 수도 없는 처지이므로 결국은 손잡고 살수밖에 없다』고 풀이했다.
중국인정책에 극도로 신경을 써야할 또 하나의 문제는 중국인 공산당두목 「진펜」의 암약이다. 「말라야」인과 중국인간의 대결이 심하면 심할수록 결국 어부지리는 「진펜」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나라는 1971년에 영국이 「수에즈」이동으로부터 물러났을 때의 안보문제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성문화된 「우산」을 원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것 갈다.
동남아에서 가장 잘살고 있지만 이 나라가 처한 대내외의 도전은 결코 적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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